Place
Vol.230
3,000여 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오르비에토.
오르비에토는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슬로푸드 운동을 시작한 도시로 유명하다.
오르비에토는 왜 패스트푸드점을 반대했을까?
본인들의 전통적 문화가 새로 유입되는 기업들에 의해 흐려질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점차 범위가 넓어져 전통뿐 아니라 도시 자연을 보호하는 운동으로까지 확대됐다.
오르비에토는 해발 195m의 바위산 위에 형성된 도시다. 900년의 역사를 가진 성벽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다. 이탈리아의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이 살았던 도시 중의 하나로 3,000여 년의 긴 도시 역사를 자랑한다. 이는 오르비에토를 관광객의 성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예수의 수의가 보관된 두오모 대성당부터 산 파트리치오의 우물, 포폴로 광장, 지하동굴 등 역사적 관광지에는 연간 방문객이 200만 명에 달한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인만큼 100년 이상의 제과점, 수공예점, 가구점, 도자기 제작소들이 많고, 그들은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중 1986년 이탈리아 로마에 대형 프렌차이즈 중 한 곳인 맥도날드가 들어서는 일이 생겼다. 이에 오르비에토를 비롯한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지역 고유의 전통음식을 지키려는 슬로푸드 운동이 일어났고, 이 운동은 음식에서 도시로 그 범위를 넓혀나갔다. 자연과 전통문화를 보호함과 동시에 경제를 살려 사람이 사는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슬로시티 운동이 된 것이다.
당시 오르비에토는 고대 시기부터 제 2차 세계대전까지 사람들이 기거한 지하동굴이 많아 도시 기반이 흔들릴 위험에 처해있었다. 더불어 계속해서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과 그들의 차량은 도시 지반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마침내 균열이 생겼다. 오르비에토는 차량을 통제하는 것을 시작으로 도시를 지키는 슬로시티 운동을 진행해 나가게 된다.
오르비에토를 둘러보면 전통과 환경을 지키려는 노력, 주민들의 경제적 능력을 살려주는 도시의 노력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오르비에토 특유의 중세 시대 분위기를 지키기 위해 병원이나 약국과 같은 필수 시설의 간판을 제외하고는 네온사인을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또한 골목마다 즐비한 상점들은 오르비에토의 특산품인 와인 가게와 긴 역사를 자랑하는 수제품 가게로 구성하여 도시의 전통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오르비에토는 자동차 없는 도시를 추구한다. 장기적 목표는 도시 전체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도시에 들어오기 위해선 외곽에 마련된 대형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푸니쿨라(Funicolare)라고 부르는 궤도 열차를 타야 한다. 도심에는 전기버스를 통해 움직일 수 있으나 대부분 걸어 다닌다. 이는 곧 환경을 생각하는 움직임이 된다. 시외의 저수지를 통해선 수소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화석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려는 오르비에토의 환경보호이다.
시의 외곽에는 저수지뿐 아니라 주민들이 유기농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개인용 농장과 공동텃밭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가축을 사육하는 농장도 있다. 여기서 자란 유기농 농산물과 가축들은 주 2회마다 도심에서 열리는 장을 통해 판매된다. 시민들은 경제적 이익을 얻어 생계에 도움을 받는다. 이러한 노력으로 오르비에토에는 대형마트와 대형 프렌차이즈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르비에토는 단순히 도시의 전통이나 환경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도 시민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이유 없이 동네에서 싸우거나 소리를 지르면 곧바로 잡혀가는 법적인 제한이 있고, 시민들은 시에스타(Siesta: 낮잠 문화)와 파세자타(Passeggiata: 저녁 산책 문화) 등의 문화를 지키며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오르비에토의 슬로시티는 궁극적으로 시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
오르비에토의 슬로시티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함께’ 변화시킨 운동이기 때문이다. 오르비에토는 자신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소도시들(그레베 인 키안티, 포스타노, 브라 등)을 찾아 그들과 협력했다. 슬로시티 운동에 참여한 소도시들은 도시만의 정체성이 뚜렷해짐에 따라 하나의 브랜드가 형성되었고, 이는 도시로의 여행객이 유입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추구는 삶의 질 향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소도시들이 연합한 슬로시티 운동은 이내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세계도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오르비에토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슬로시티 국제연맹본부를 세웠다. 슬로시티의 세계화를 위한 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슬로시티가 될 수 있는 도시의 기준을 담은 인증제도를 만들었고, 이를 국제 표준화했다. 슬로시티가 되기 위해선 크게 다음과 같은 요건들을 확인한다. 먼저 도시의 인구가 5만 명 이하여야 하고, 도시 환경에 필요한 환경정책을 실시하고 있어야 하며, 유기농 식품을 재배하고 소비해야 한다. 또한 전통 음식과 문화를 보전해야 한다. 이외에도 세부적인 평가 기준을 충족해야 슬로시티로 선정된다.
오르비에토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은, 이제 전 세계적인 운동이 됐다. 33개국 291개의 도시가 오르비에토를 모티브 삼아, 슬로시티로 거듭나고 있다. 많은 도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는 도시의 획일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두가 ‘빨리빨리’를 외칠 때, 조금은 여유를 갖고 우리 도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르비에토가 도시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