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질화갈륨’ 전력 반도체
반도체의 역사는 1950년경 접촉 트랜지스터의 도입과 함께 시작되었다. 실리콘은 우수한 특성으로 반도체의 주요 소재가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실리콘 반도체 제품은 고정밀 반도체 제조 장비의 탄생과 소자 구성 및 웨이퍼 공정의 최적화로 진화해 왔다. 이는 우리 생활의 주요 부분이 된 소형, 고성능 전자 제품의 개발에 기여했지만 실리콘 기반 반도체의 성능 향상은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전력반도체는 자동차, 스마트폰, 냉장고 등 전기로 작동하는 제품이 효율적인 전력을 운용하는 데 사용된다. 이러한 전력반도체는 실리콘(si) 기반으로 제조되는데, 실리콘은 고전압 환경에서 전력 전달 효율이 낮아 에너지 손실률이 크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 실리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소자인 질화갈륨(GaN)이 각광받고 있다.
질화갈륨은 갈륨과 질소를 합친 화합물이다. 질화갈륨은 소재 특성상 열에 강하고 실리콘 대비 신호 변환 속도가 수십 메가헤르츠(MHz)에 이를 정도로 빨라서 별도의 에너지 저장 공간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실리콘 대비 1/3 수준의 소형화가 가능해 응용처 다변화에 유리하다.
모바일 사용자가 많아지고 세계적으로 서버·데이터센터 시장이 커지면서 전력 효율성이 좋은 반도체 칩의 수요가 늘어났다. 이에 반도체 제공업체는 실리콘 기반 웨이퍼가 아닌 탄화규소(SIC, Sillicon Carbide)나 질화갈륨(GaN, Gallium Nitride)과 같은 화합물 기반의 웨이퍼를 찾기 시작했다. 두 화합물은 실리콘에 비해 전력 손실이 적기 때문에 실리콘 반도체 칩에 비해 전력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탄화규소나 질화갈륨이 실리콘에 비해 전력 손실이 적을 수 있는 비결은 ‘밴드갭(Band Gap)’이다. 밴드갭은 전자가 전류로 흘러갈 수 있는 대역인 ‘전도대(conduction band)’와 평소 전자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고 기저에 깔려 있는 대역인 ‘가전자대(valence band)’ 간 차이를 말한다. 모든 물질은 전자와 밴드갭을 가지고 있는데, 각 물질의 특성에 따라 전류가 흐르는 조건과 정도 등에 차이가 있다.
차세대 전력 반도체의 소자로 각광받는 질화갈륨은 반도체이지만 밴드갭이 넓어 다른 물질에 비해 전자 손실이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높은 주파수와 전압, 온도에서 더 낮은 전력 손실로 작동할 수 있다. 우수한 고온 안전성과 온저항(impedence)도 가지고 있다. 온저항이란 회로에 전압이 가해졌을 때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는 값을 말한다. 이 수치가 낮으면 전도된 이후에 전류가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업계는 질화갈륨을 차세대 전력반도체의 핵심으로 꼽고 있다.
질화갈륨은 자율주행 자동차의 핵심부품인 라이다(LiDAR·레이저 영상 센서)와, 고대역 주파수를 사용하는 5G 통신 등의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통신 시장에서 널리 사용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기지국 전력 증폭기의 주된 RF 공정 기술이 실리콘 기반의 LDMOS 소재인데, 질화갈륨은 이보다 효율은 10% 높되, 크기는 절반에 전력용량이 20% 낮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작년부터 전력반도체에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지난 2021년 4월 정부는 ‘차세대 전력 반도체 기술개발 및 생산역량 확충 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방안은 2025년까지 차세대 전력반도체 상용화 제품을 5개 이상 개발하고, 이를 뒷받침할 6~8인치 SiC·GaN 파운드리 인프라를 국내에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차량용 반도체칩 개발에 뛰어든 DB하이텍은 최근 질화갈륨을 비롯한 탄화규소 반도체 공정 기술 개발에 나섰다. LG전자도 질화갈륨 전력 반도체칩 최대 공급사인 내비타스(Navitas)와 협업을 이루고 있다. 급속 충전기에 대한 수요가 노트북에서도 일어나면서다. 시장조사업체 욜디벨롭먼트에 따르면 질화갈륨 전력 반도체 소자 시장은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59%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