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77 June 2021
4K, 8K를 구현할 수 있는 mini LED, OLED, micro LED 등 다양한 디스플레이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마이크로 LED는 가장 뛰어난 화질과 색 재현력, 명암비를 자랑하지만 아직까지 가격이 너무 높아 쉽게 접할 수 없다.
이때 ETRI가 신소재와 신공정을 개발하면서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했다.
저는 원래 반도체 공정 중 접합공정을 연구했습니다. 디스플레이 분야는 저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렇다 보니 디스플레이 공정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흘러간다는 전문적인 지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마이크로 LED 관련 기사가 많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이 분야를 알아보게 됐습니다.
마이크로 LED 시장과 자료 등을 찾아보니까, 화질은 좋은데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마이크로 LED의 가격을 높이는 요인을 찾아보니 마이크로 LED를 기판 위에 배치하고 접합하는 전사 공정과 접합공정에 사용되는 장비의 가격이 너무 비싸고, 공정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16년 동안 접합공정과 소재를 연구해왔고, “붙이는게 핵심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서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연구 동향을 보면 스타트업과 특허, 아이디어, 제품, 소재 등 거의 모두 마이크로 LED를 기판 위로 배치하는 전사 공정을 위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저희도 마이크로 LED에 대해 연구하면서 전사공정을 연구하는 연구팀에 물어보기도 했었지만, 접합 분야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솔루션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가진 접합 기술을 보여드려도 망설이시는 모습이었어요.
이때 기업들이 저희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 디스플레이는 일본에서 개발한 ACF(Anisotropic Conductive Film)라는 소재를 가지고 접합공정을 처리했고 공정과 장비가 모두 ACF 소재를 사용하다 보니 그 관성으로 거의 모든 디스플레이가 ACF 소재에 맞춰져 있었죠. 그런데 마이크로 LED의 접합공정을 ACF 소재로 처리하려니 오류가 많았습니다. 계속 문제가 발생하니까 솔더(Solder)1), 쉽게 말해 납땜을 해야겠는데, 기업들은 ACF에는 익숙했지만 솔더라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저희가 이전에 반도체 패키징과 접합공정, 소재와 관련된, 솔더 관련 논문을 많이 발표했으니 저희를 찾아오기 시작한 거죠.
처음에는 마이크로 LED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마이크로 LED 기술 자체가 워낙 중요하고 대만이나 중국, 미국, 일본 기업들이 뛰어들어 경쟁하고 있어서 기술 보안이 철저해요. 기업들이 마이크로 LED 샘플을 가지고 찾아오면서 비로소 저희가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는 오히려 저희가 기업들이 주목하지 못하던 것들을 알려줬습니다. 예를 들어 솔더의 개념과 구조를 알려주고, 공정을 맞췄습니다. 때마침 저희가 개발한 소재가 공정에도 딱 맞았습니다.
그러면서 저희도 마이크로 LED에 대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업체에서 불도 켜지 못해보던 것을 점등하고, AR 글래스를 만들고 하면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어요. 일반적으로 국책연구기관들이 새로운 기술을 접하는 것은 국책연구과제들을 통해 접하게 됩니다. 마이크로 LED를 만드는 사람, 디스플레이 기판을 만드는 사람 등 역할을 나누고 팀을 짜서 신기술을 연구하게 되는데, 저희는 특이하게 업체가 먼저 찾아오고 저희가 솔루션을 제공하면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1) Solder 반도체와 기기 기판을 연결하는 합금
기존부터 저희는 온도가 빨리 높아지고, 온도가 높아졌을 때 거기에 맞춰 반응하는 신소재를 만드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그 결과, 신소재인 사이트랩(SITRAB)을 개발했는데, 이것을 활용할 곳을 찾지 못해서 연구를 멈춰야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2016년에 레이저 장비를 도입했는데 바로 이 장비에 저희 소재가 정확하게 들어맞았던 겁니다. 연기도 나지 않고, 레이저와도 잘 들어맞아서 이때부터 저희가 개발한 사이트랩을 레이저 공법을 센서와 반도체 패키징 공정에 적용했습니다. 그 경험과 노하우로 마이크로 LED 전사 접합을 연구하면서 마침내 동시 전사 접합 공정, 즉 사이트랩 공정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남들이 할 수 없다고 했었던 것들을 저희가 해내고 있죠.
기존에 전사 장비는 원천특허가 미국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비의 가격이 10억 정도이고, 공정이 굉장히 느려요. 그래서 양산을 하려면 장비가 상당히 많이 필요하고, 접합 장비도 따로 갖춰야 해서 비용이나 공간, 시간도 많이 들어갑니다. 불량을 처리하는 공정에도 LED 1개 당 5분 이상이 걸립니다. 한계도 많습니다. 8K 디스플레이에는 억 단위로 LED가 필요한데 0.01%의 불량률이라고 해도 수만 개의 불량이 생기는 거죠. 그 하나하나를 5분씩 걸려 수리한다고 하면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겁니다.
그런데 저희가 개발한 기술은 전사 장비, 접합 장비 따로 구비할 필요 없이 저희 장비 하나면 공정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장비 비용은 10분의 1, 생산성은 10배 이상으로 개선됩니다. 수리에 걸리는 시간도 100분의 1, 설비 투자비도 100분의 1 수준입니다. 마이크로 LED의 단가를 높이는 공정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 기술의 목표는 최종적으로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 가격을 20분의 1 가격으로 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가격은 일반 OLED와 비슷한데 훨씬 좋은 화질을 즐길 수 있습니다.
소재와 부품, 장비의 국산화도 큰 장점입니다. 디스플레이 기술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소재나 장비, 부품 부분에서 다른 나라, 특히 일본을 따라가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희가 레이저 공정에 적합한 신소재, 사이트랩 접착제를 개발 했습니다. 저희 기술을 처음 개발할 때의 목표는 소재, 부품, 장비를 국산화하자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었죠.
레이저 공법은 반도체 패키징 쪽에 쓰이고 있는데, 아직까지 기존 소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량률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저희가 개발한 소재와 기술을 태블릿 PC, 노트북, AI 등에 적용하면 큰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스마트 워치, AR 글래스, 전장용 디스플레이, 플렉서블 디스블레이 등 다양한 분야에 맞는 소재와 공정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최광성 연구단장은 그의 최종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동안 한국이 빠르게 잘 만든다는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강점이 있었다면, 이제 그것을 넘어 소재, 공정, 장비 등에 원천기술을 개발하여 생산까지 적용하는 ‘퍼스트 무버’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상용화 단계가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그는 ‘미래기술, 원천기술을 개발해 실제 양산되는 목표’를 이루고 싶다며 웃음지었다. 그의 말처럼 ETRI의 마이크로 LED 신공정과 사이트랩이 마이크로 LED를 상용화하는 첫걸음으로 기억되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