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69 February 2021
뇌 활동과 신호를 시각화해 즉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CBRAIN 시스템은 뇌과학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연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번 호에서는 CBRAIN 시스템을 개발해 많은 분야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ETRI 지능형센서연구실 이성규 책임연구원을 만나보았다.
CBRAIN을 설명하기에 앞서 ‘집단지능’의 개념을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집단지능이라는 개념은 수만 마리가 모여서 사는 개미 떼에서 시작했습니다. 개미 한 마리의 지능은 미약하지만, 수만 마리가 모였을 때의 지능은 놀랍도록 뛰어납니다. 1910년대 곤충학자인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는 개미의 이런 ‘사회적 행동’을 관찰하고 집단지능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이처럼 집단지능이란 각각 개별의 개체가 하나로 모였을 때 발현되는 지능을 말합니다.
집단지능에 대한 많은 연구 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 제한된 실험 환경에서 연구가 시행됐고 유선 시스템의 한계로 실험이 끝난 뒤 복잡한 신호를 오프라인에서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한된 조건에서는 하나의 뇌를 제대로 관찰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뇌 연구는 개별개체의 행동이나 뇌파를 연구하는 것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여러 인간이 모였을 때, 즉 사회적인 활동을 할 때는 각각의 뇌를 따로 관찰했을 때와는 또 다른 신호가 나타납니다. 이전과 같은 제한적인 실험조건에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뇌 신호와 행동이 나타나는지는 관찰할 수 있었지만, 복잡한 사회적 행동과 뇌 신호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번에 연구원이 KIST와 함께 개발한 CBRAIN 시스템은 Collective Brain Research platform Aided by Illuminating Neural activity의 약자로, 뇌 신호, 즉 신경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분석하여 반짝이는 빛으로 나타내주는 ‘실시간 뇌활동 시각화 군집 뇌연구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여러 개체가 사회적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중에 뇌의 신호를 즉각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경험에 의존하던 집단지능 연구가 뇌 활동을 시각화하면서 행동과 뇌 활동의 관계를 객관적이고 즉각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의미는 집단지능·군집 뇌 과학 연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두 분야에서 CBRAIN 시스템 이전과 이후 연구 양상이 확연하게 달라질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하나의 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연구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CBRAIN 시스템 개발은 뇌의 한 부분, 혹은 하나의 뇌가 아닌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의 뇌’를 관찰한다는 새로운 시각과 방법을 제시했고 이것은 다양한 연구·학문 분야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입니다.
CBRAIN의 또 다른 의미는 개별 개체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발견하지 못한 뇌파의 특이한 활동을 다채롭고 빠르게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저희는 이러한 CBRAIN의 장점을 활용하여 군집 동물들의 행동과 뇌 신호를 동시에 측정·관찰하여 특정한 상황 속에서의 사회적 행동과 이에 따른 뇌 과학적 현상을 세계최초로 발견했습니다. 군집 동물들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행동을 할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해낸 것입니다. 이는 군집 뇌 신호와 사회적 행동 간 연관 관계를 밝혀내는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CBRAIN으로 쥐의 뇌 활동을 관찰하면서 발견한 사회적 현상 중 대표적인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하나의 개체가 있는 경우보다 여러 개체가 같이 있을 때 공포감을 더 적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계실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뇌 신호를 시각화하여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측정함으로써 사회적 행동과 뇌 활동 간 객관적 상관관계를 밝혀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다른 점은 여러 개체가 모여있을 때 위협적인 요소가 나타나면 위험 요소와 가까운 바깥쪽의 개체들은 큰 공포심을 느끼지만 동료 개체에 둘러싸인 안쪽의 개체들은 평소와 같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각각의 개체가 서로를 보호하고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 모여드는 행동과 뇌 신호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집단적 행동과 뇌 활동 간 관계는 CBRAIN이 아니라면 발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 연구진은 이 시스템을 CBRAIN ‘1.0’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선명한 뇌파를 어떻게 얻을 것인지, 얻어낸 뇌파를 어떻게 분석할 것이며 얼마나 빨리 분석할 수 있을 것인지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CBRAIN 1.0은 1천분의 1초(1msec) 안에 뇌파를 분석할 수 있는 엣지 컴퓨팅을 사용하고 있는데, 지금보다 더 빠르게 뇌파를 분석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은 뇌의 아미그달라(소뇌편도, Amygdala)라는 부분에서 나오는 신호를 분석하는데, 앞으로는 컴퓨팅 속도를 높여 아미그달라뿐 아니라 뇌의 더 많은 영역을 분석하고 시각화하여 뇌의 특정한 신호가 사회적 행동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실제 특정 뇌의 부분을 자극하는 전류를 흘려보내 개체의 행동에 변화를 줄 수 있는지, 집단과 무리의 행동을 분석하는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려고 합니다.
또 지금은 8마리를 관찰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100마리 정도를 한 곳에서 관찰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우울증이나 자폐증 등 질환과 뇌 활동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고 약물 개발에 도움이 되는 연구도 계속하려고 합니다. 실제 자폐나 우울증 등 질병은 혼자 있을 때보다는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때 그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CBRAIN을 통한 연구가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는 사회적 행동과 군집 뇌 활동의 관계 중 아주 일부를 관찰했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것들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직 풀리지 않은 난제인 집단지능 발현의 원리를 풀어내고 싶습니다.
CBRAIN 시스템은 한 번에 다수의 뇌를 연구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현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실험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것처럼 사회나 사회행동에 대한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사회학자와 협업 또한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즉 사회성을 띄는 동물을 연구하는 생태학 분야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뿐 아니라 통계학, 물리학, 수학과 더불어 최근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때의 뇌 활동을 데이터화하여 분석하고 인공지능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CBRAIN 시스템을 통해 뇌 과학이 다양한 분야와 협력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성규 책임연구원은 “CBRAIN 시스템 개발 최종목표는 이 시스템을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후대를 양성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KIST와 함께 개발한 CBRAIN 시스템이 단순히 뇌 과학 분야에서만 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과학·사회 분야의 연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면,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자가 ETRI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