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각을 느끼는 전자 피부 개발,
언제부터였을까?
사람의 피부를 모방한 ‘전자 피부(electronic skin)’ 시대가 도래했다. ‘터미네이터’와 같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공 피부가 의족은 물론 인공지능, 신개념 헬스케어에 이르기까지 적용 범위를 크게 확장하는 추세다. 사용량도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조사 기관인 ‘마켓 리포트’는 관련 시장이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17.2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피부는 수직 압력, 진동, 인장력, 유체의 흐름 등 다양한 감각을 인식하고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이렇게 뛰어난 사람의 피부처럼 외부 충격에 의한 손상을 스스로 회복하고 다양한 압력을 인식하는 전자 피부 개발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전자 피부는 외부신호를 받아들이는 감지 소재와 신호전달 및 증폭을 담당하는 트렌지스터와 결합을 통해 사람 피부 기능을 모사한 플렉서블 전자소자다. 전자 피부 개발시작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과 일본에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고 당시 연구자들은 실리콘에 센서를 집어넣은 뒤 인체에 부착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생각한 것처럼 유연하지 않아 사람의 피부처럼 재현하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탄소화합물이 첨가된 유기재료다. 대표적으로 쓰이는 것은 꿈의 소재라 불리는 그래핀으로 실제 피부만큼 유연하고 신축성이 뛰어나다.
지난 2017년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University of Glasgow) 공과대 연구팀은 그래핀을 사용해 사람의 피부보다 더 강하고 부드러운 인공 피부를 선보인 바 있다. 이 전자 피부는 센서를 부착해 피부 스스로 감촉을 느끼는 것은 물론 태양 에너지를 흡수해 전기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 피부 속에서 에너지가 흐르는 만큼 살아있는 피부처럼 오랜 기간 탄력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투명하면서 전기 작용에 매우 예민한 상태를 지속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본 기술을 토대로 ‘스마트 핸드(Smart Hand)’를 완성했으며 로봇, 장애인 의족, 건축, 의료, 섬유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전자 피부 기술과
치열한 경쟁
최근 발표되는 전자 피부 기술의 발전은 높은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웨어러블 기기의 최종 목적지는 입는 대신 부착하거나 몸에 삽입하는 형태가 되리라 예상되는데, 전자 피부의 역할이 클 것으로 기대한다.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는 전자 피부도 등장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 연구팀이 발표한 ‘스트레쳐블 스킨(Stretchable skin)’이다. 또 2019년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서 개발한 전자 피부 ‘ACES(Asynchronous Coded Electronic Skin)’는 사람보다 1,000배 더 빠르게 대상을 감지할 수 있었다. 실제 속도를 측정한 결과 사람이 눈을 깜빡이는 속도보다 10배 빠른 10밀리초(millisecond, ms) 내에 물체의 강도, 질감, 모양 등을 정확히 식별했다. 이런 기술이 가능해진 이유는 사람의 신경 역할과 같은 센서 덕분이다. 연구팀이 기능을 확장하기 위해 센서 수를 1만 개까지 늘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전자 피부는 한국 과학자들이 많이 활약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2018년 2월, ETRI는 그래핀 복합소재 기반 직물형 센서 개발을 한 데 이어 같은 해 8월에는 센서를 고무형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수천 번 구부리거나 늘려도 높은 재현성을 갖고 기존 센서 대비 10배 이상 높은 민감도를 지닌 고무형 압력 변형(Strain) 복합센서를 개발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와 같은 고무형 센서가 향후 의수나 의족, 로봇에 먼저 적용이 가능하고 병원의 재활치료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재활치료의 경우, 치료과정의 회복 정도를 알기 매우 어려웠는데 본 센서를 활용하게 되면 치료 정도의 정확한 정량 분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즉 환자가 팔을 올리는 재활 과정에서 피부에 센서를 붙여 측정케 되면 팔 올림에 따른 저항 변화를 쉽게 관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자동차 시트에 본 센서를 붙여 활용하면 운전자의 습관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장시간 운전 시 나타나는 특유의 질병, 또는 근 골격계 질환의 원인을 알게 되어 치료도 도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자 피부가 불러올
새로운 패러다임
미래에는 전자 피부를 통해 인체와 같은 팔과 다리, 손과 발 등의 제작이 가능할 전망이다. 특히, 로봇은 물론 의료 분야, 재활치료 기기 분야 일대에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 영국 워릭대학교 WMG(Warwick Manufacturing Group)에서는 병원에 가지 않고 가정에서 수행할 수 있는 물리치료 과정에 전자 피부를 투입해 원격 진료체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환자 신체에 전자 피부 패드를 부착함으로써 환자의 움직임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재활치료기기의 경량화는 물론 고가형의 중대형 기기인 현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유연하고 가벼운 소재로 이루어진 소프트 웨어러블 재활 기기가 개발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밖에도 전자 피부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가령 딱딱한 움직임을 보이는 로봇도 전자 피부의 개발로 사람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행동이 가능해졌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사람과 같은 로봇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 피부는 수술용 로봇에도 적용되어 수술 부위의 촉감을 집도의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게 할 것이다.
기술이 진보하면서 인간은 점차 전자 장치를 삽입하거나 착용하고 반대로 로봇은 인간을 닮아가는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피노키오가 진짜 아이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전자피부 기술이 이뤄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