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형반도체로
구현하는
영화 속 기술
인공지능(AI)을 소재로 한 SF 영화는 1980년대 이후 붐을 이루며, 지금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적인 기술적 기대감을 충족시켜왔다. 유명 외화 시리즈 <전격 Z 작전>의 슈퍼카 키트(KITT)는 범죄 소탕을 위해 자율주행은 기본이고, 주인공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발전한 인공지능으로 등장한다. 이후 영화 속 인공지능 기술은 단순히 미리 설정된 기능뿐만 아니라, 스스로 학습한 뒤 예측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가사 로봇 앤드류는 아이들을 돌보는 등의 가사활동을 벗어나 작품을 만들어내고, 사유하는 안드로이드로 표현된다. <아이언맨>의 전투 보조용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는 평상시 역설과 딜레마를 이해하며, 높은 수준의 문학적 감각을 소유한 것으로 그려진다. 한편 <Her>의 사만다는 높은 데이터 처리 능력을 기반으로 소통과 학습을 통해 인간과 흡사한 다양한 감정을 공유한다.
현대 인공지능은 대중매체에서 표현된 것처럼 감정을 느끼거나 사유를 할 순 없다. 그러나 폭발적인 연산량이 요구되는 몇몇 분야에서 인간의 정확도와 예측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 특히 시각이나 청각을 기반으로 한 패턴 분석에서 뛰어나 사람처럼 실시간으로 사물을 구별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인공지능의 기반이 되는 학습을 위한 고속데이터 처리 기술개발은 어디까지 진보해왔을까? ETRI에서 개발한 지능형반도체가 좋은 예시다. ETRI는 2016년 무인차 전용 프로세서 알데바란(AB3), 2017년 자율주행차 칩 알데바란(AB5)을 개발한 바 있다.
업그레이드되는
ETRI의 알데바란
2017년 연구진이 발표한 지능형반도체 기술은 손톱 크기의 반도체 칩을 통해 사람과 유사한 정확도와 속도로 물체를 인지했다. 과거의 사물 인식 기술은 차량 번호판이나 고속도로 차선, 사람 얼굴 등과 같은 일부 한정된 분야에서만 사용되어왔지만, 인공지능 기술은 사람의 신경망과 같은 인지 프로세싱 구조를 통해, 단순히 입력된 이미지를 처리하는 것을 넘어서서 학습을 기반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다.
해외 유수 기업들 역시 유사한 기능을 갖는 프로세서 칩 개발이 한창이나, 실시간 고용량 데이터 처리에 드는 소비전력 측면에서 기술 확산에 문제를 겪어 왔다. 연구진은 자체 개발한 에너지 고효율 프로세서 설계 기술을 통해, 모바일 ICT 기기 수준에서도 실시간으로 범용 개체를 인지하는 시각지능을 실현했다. 전력 소비의 효율 측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보였다.
최근에는 지난 2월 말, 고성능 프로세서인 알데바란의 새 버전 ‘AB9’ 칩을 개발하고, 현재 국내 이동통신사를 통해 음성인식 서비스를 위한 최종 성능검증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자비스’와
‘사만다’ 같은
인공지능을
꿈꾸다
나아가 ETRI는 고성능의 연산능력과 전력소모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NPU(Neural Processing Unit)를 개발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반도체 칩은 40TFLOPS(테라플롭스) 수준의 연산능력을 보여주면서도 전력은 15W(와트)만 든다. 기존 상용제품보다 전력당 연산능력도 최대 25배로 높이고, 전력소모량은 20배 낮췄다.
가격 경쟁력도 우수하다. 기존 상용제품인 GPU 칩 하나의 경우 800~1,000만 원대로 고가였으나, 연구진의 칩은 수십만 원대의 가격 책정이 예상되어 최대 50배나 저렴한 경쟁력이 있다. 또 딥러닝 연산에 특화하여 개발 및 응용 분야도 다양해 상용화도 쉽다.
연구진은 향후 사람처럼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을 목표로, 기계와 사람이 대화를 통해 목적지를 정하고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서비스가 가능한 칩 개발이 가능해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어쩌면 영화에서 그려진 인공지능 ‘자비스’나 ‘사만다’처럼 감정을 이해하고 사유하는 인공지능은 아직 상상의 영역에 있다. 하지만 현재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산능력과 전력으로 인공지능 칩으로 물체를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분류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생각하며 말하는 영화와 같은 날이 실현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