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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시공간을 초월한

비애의 역사를 거닐다

남한산성

작년 10월,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했다. 조선시대 인조와 조정이 청나라의 침입을 피해 47일 동안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머물렀을 때의 이야기다. 영화에서 본 전쟁의 참혹한 모습과는 달리 오늘날 남한산성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청량산과 남한산을 아우르는 남한산성은 등산객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코스다. 201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그곳. 가을에 흠뻑 물든 영화 속 <남한산성>을 ETRI와 함께 거닐어보자.

01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히다, 남한산성 행궁(行宮)

“나를 성 밖으로 나오라고 하는구나. 나가면 다음은 어찌 되는 것이냐.” - 인조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히다, 남한산성 행궁(行宮)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히다, 남한산성 행궁(行宮)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히다, 남한산성 행궁(行宮)

행궁은 전쟁이 터진 위급한 상황이나 국왕이 궁궐을 나왔을 때 잠시 머물던 곳이다. 영화 <남한산성> 속에서 인조가 주로 머물던 곳으로 등장한다. 행궁은 김상헌과 최명길이 인조를 앞두고 논쟁하던 곳이며, 청나라의 무차별한 공격으로 남한산성이 무너졌을 때 인조가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던 장소다. 이처럼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 혹은 내란이 터졌을 경우 지원부대가 한양에 올 때까지 국왕과 신하가 피신해 임시로 머물 목적으로 건립됐다. 영화 <남한산성>을 떠올리며, 걸었던 발자취를 함께 되새겨보자.
행궁의 정문은 한남루(漢南樓)다. 누각 모양으로 생긴 문을 지나 외삼문(外三門)을 만난다. 다시 외삼문을 지나 외행전 앞에 도착하면,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신하들과 국정을 운영하던 장소에 다다른다. 오늘날 임시정부청사와 같은 역할이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쏜 홍이포가 외행전 기둥을 맞혔다고 기록했다. 비록 비애의 장소로 기억되지만, 외행전은 인조가 군사들에게 음식을 베풀기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외행전 뒤 계단을 올라 내행전으로 향하니 임금의 침전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나왔다. 대청마루엔 일월오봉도 병풍과 임금이 앉던 어좌(御座)가 놓여 있다. 행궁의 모든 건물은 뒤로 갈수록 높아졌다.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후원에서 내행전과 외행전 쪽으로 탁 트인 가을의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히다, 남한산성 행궁(行宮)

02

임금의 어명을 받들고 산성을 나서다, 암문(暗門)

“내가 이 일을 해내면 성안의 모두가 살 수 있다.” - 날쇠

임금의 어명을 받들고 산성을 나서다, 암문(暗門)임금의 어명을 받들고 산성을 나서다, 암문(暗門)

동서남북 4개의 문과 문루, 5개의 장대가 있는 남한산성은 총 길이 12.4Km, 높이 7.3m에 달하는 산성이다. 또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쌓은 옹성과 16개의 암문(暗門)이 보존되고 있다. 암문은 식량이나 무기를 옮기거나 적군 몰래 외부와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만든 성문으로, 영화 속 날쇠가 임금이 쓴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선 문이다.
영화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암문은 날쇠라는 인물과 관련 있다. 날쇠는 남한산성에 살던 대장장이로 천민 신분이지만 성 밖에 머물던 조선 군사에게 인조의 편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는 날쇠가 임금의 어명을 받아 편지를 감추고, 산성을 몰래 빠져나가는 통로를 암문으로 묘사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허구의 인물일 것 같은 이 날쇠가 실존 인물이라는 점이다. 날쇠는 남한산성에 살던 서흔남(徐欣男)이란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 서흔남은 영화에서처럼 대장장이이자 기와를 만드는 기술자였다. 실제로 그는 청나라 군대가 산성을 포위했을 때 목숨을 걸고 지방에 있던 군사에게 상황을 알렸고, 이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전쟁 후 높은 벼슬을 받았다.

임금의 어명을 받들고 산성을 나서다, 암문(暗門)

03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수어장대(守禦將臺)

“한 나라의 군왕이 어찌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 - 김상헌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수어장대(守禦將臺)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수어장대(守禦將臺)

영화 속 수어장대는 결사 항전의 의지를 담은 인조의 글을 김상헌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군인들 앞에서 읽은 장소다. 또한, 이시백을 비롯한 장군이 군인들을 지휘하던 건물로 더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 없는 상황에서 싸우길 결심한 장소다.
수어장대의 장대(將臺)는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고, 적군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설치한 누각이었다. 또한, 적을 관측하기 위한 건물이었기 때문에 산성 안 가장 높은 위치에 지었다. 남한산성에는 원래 5개의 장대가 있었지만, 현재는 수어장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한산성에 남은 건물 중 가장 화려한 수어장대에 걸터앉아 가을에 물든 남한산성 풍경을 감상해본다. 이제 제법 쌀쌀해진 가을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역사 속 병자호란의 결말은 삼전도의 치욕으로 불리는 결과로 마무리됐다. 그 후 382년이 지난 지금의 산성은 다행히 영화 속 <남한산성>처럼 외롭거나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주변 산세와 아름다운 굴곡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성곽이 아름답기만 하다.
경기관광공사는 이달 ‘가봐야 할 도보여행 명소’ 5곳으로 남한산성 등산로 1코스를 꼽았다. 남한산성 1코스는 산성종로(로터리)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영춘정 - 남문 - 산성종로로 이어지는 3.8km구간이다. 시간은 약 1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이번 주말, 더 늦기 전에 남한산성으로 여유로운 가을 산책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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