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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8 · July 14 · 2017 · Korean

Focus  ______  정영준 그룹장 · 천한성 선임연구원 임베디드시스템연구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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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의 미래를 오픈하는 오픈소스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래서 앞날을 준비하는 현 세대는 두 가지 갈림길에 서고 만다. 과거의 방식을 따를 것인가 새로운 방식에 도전할 것인가?고인 물은 상할 위험이 큰 법. 폐쇄적인 기술이전 방식에서 공공의 정보화인 오픈소스 방식으로의 변신을 꾀하며 ETRI의 미래를 열기 위한 두 사람의 행보를 쫓아본다.

‘한국은 그런 것을 할 수 없는 나라다, 그냥 공짜를 써라’라는 편견에 대한 반박

천 선임은 대학원 때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리눅스를 보며, 세계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공짜인 리눅스를 써라. 한국은 그런 것을 할 수 없는 나라다’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가령 구글이 모바일 OS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배포하고 앱이나 다른 서비스를 이용시 광고를 끼워 파는 등 상당한 수익을 취하는 점을 감안할 때, 오픈소스는 매력적인 전략일 수 있으나, 이는 엄청난 시간과 투자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패스트팔로워로 성장한 우리나라에서 안드로이드의 탄생을 기대하기 어렵단 현실을 반영한 말이겠지만, 천 선임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원통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는 자신이 만든 기술을 널리 보급하여 시장을 선도하게 만들리라 다짐했다.

기술이전 VS 오픈소스

정 그룹장은 출연연에 속한 연구원으로서 R&D 방향과 성과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컸다. 기술이전이 그동안의 ETRI가 추구하는 형태이지만 과거의 영광이 그대로 재현될지는 불투명하다는 현실을 인지했다. [기술이전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즉, 한계에 달했다고 느낀 것이다. 그 이유는 기술이전은 기업에게 이전 비용을 받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자체 보유 인력을 키우고 역량이 상당한 대기업의 입장에서 기술이전을 받기보다 스스로 준비하는 움직임이 있다. 가령 삼성전자는 30년 전의 삼성전자가 아닌 글로벌 탑 기업이다. 안타깝게도 기술이전비를 지불할 여력이 있는 기업 역시 대기업이기에 수요자가 점점 이탈한다고 볼 수 있다. 여러 면에서 대규모 기술이전은 성사되기 어려운 형국이다. 여기서 두 사람은 수익적인 결과 외에도 ETRI가 이미 잘 나가는 기업만이 아니라 벤처나 중소기업을 키워 잘 나가는 기업들이 많아지게 도와야 한다는 ‘공공의 역할’에 대해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 정보의 공유가 필수다.
오픈소스는 시장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동일 조건 또는 저비용으로 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상위 기술이 나올 가능성을 높인다. 이런 기회를 포착해 공공기관뿐 아니라 일반 기업 역시 오픈소스를 준비하는 상황이기에, 오픈소스는 거스르기 힘든 거대한 흐름이 될 것이다.

산업 영향력으로 평가를 받아야 할 때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진입장벽을 낮춰 신사업 및 신생 기업 출현을 유도하는 게 공공의 역할이라는 당위성에 수긍이 되지만 솔직히 의문이 든다. 기술을 무료로 사용하게 하는 오픈소스의 이득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두 연구원은 ETRI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으며, 업계에 있는 이들이 결국은 정보를 공개한 전문가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락인(Lock in) 효과란 말이 있는데, 이동통신사가 패밀리 할인처럼 혜택할인으로 소비자를 다른 통신사로 이동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례처럼, 자사의 서비스를 많이 쓰게 해 쉽게 대체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시장을 선점하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상당한 가치가 따라온다. 그렇다면 어떤 비용을 치를 것인가? 오픈소스는 큰 용기가 뒤따라야 한다. 섣불리 준비 되지 않은 채 기술을 공개하면 비난과 평가를 동시에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 그룹장은 질타를 두려워말라고 전했다. 몇 년 간 과제를 비공개로 둔 채 연구할 경우, 막상 시장에 내놓았을 때 예상 밖의 문제로 빛을 보지 못하는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반면 오픈소스로 둔다면 자연스럽게 검증을 받을 수 있고, 시장과의 상호 작용으로 다시 적절한 타깃을 찾을 수 있어 연구원 자체의 경쟁력이 올라가게 된다. 천 선임은 오픈소스 자체가 처음부터 완벽한 것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집단 지성이 모이는 오픈소스는 함께 수정하는 것이 기본이기에 더 완벽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득실을 고찰했을 때, 오픈소스 SW는 기술이전료와 같은 당장의 수익창출은 어렵다. 그렇기에 기관 평가 방식도 수익 창출에서 ‘산업 영향력으로 평가 받는 것’으로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두 사람은 주장했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려는 연구원의 노력에 상응해, 기관 평가 방식 역시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비장의 무기, 파일 시스템

두 사람은 오픈소스가 중요하다 하나, 모든 연구 분야를 오픈소스로 방향을 바꾸라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픈소스가 적합한 분야를 찾아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시스템SW와 기반 SW를 연구하는 부서에 속한 두 사람은, 더 많은 개발자와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개 SW결과물 정책이 의미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운영체제 커널 연구자로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오픈소스 프로젝트인 리눅스 커널을 선택했고, 또 여기서 파일 시스템에 주목했다.

이들은 5년 간 피와 땀으로 개발한 기술을 올해 중 오픈소스로 공개할 계획이다. 그런데 공개하기도 전에, 기업의 러브콜을 받았다. 사실 오픈소스 SW는 비지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 민간 수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오픈소스 SW이기에 정보 공개를 꺼리지 않았고 덕분에 일반에 공개하기도 전에 민간으로부터 수탁 의뢰를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기술을 오픈소스로 내걸면 민간 수탁의 기회가 넓어질 수도 있다. 두 연구원은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커뮤니티 활동으로 관련 산업과 ETRI에 의미 있는 공개 SW기여 사례를 창출하고, 해당 분야의 대외 신뢰도를 높일 것을 목표로 한다.

필요한 도움

오픈소스로 가치를 증대시키는 모델에는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사용자가 이용하는 서비스는 응용SW인데, 시스템SW는 응용SW가 동작하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사용자가 직접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에 시스템SW가 어떤 쓰임새를 가지는지 일반인에게 보여주는 것이 어렵다. 정부 R&D 기획은 서비스를 요구하기 때문에 시스템SW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렇기에 공공 인프라 성격이 강한 시스템SW에 대한 인식 재고 및 연구원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들이 잘 가지 않은 쉽지 않은 길에 오른 두 사람의 행보를 응원하며, 훗날 오픈소스 이후의 상황을 취재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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