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X Tech Seminar 시리즈 5차
ETRI 미래전략연구소 표준연구본부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진입을 앞두고 IDX(Intelligent Digital Transformation) 분야의 주요 핵심기술을 고찰하는 ‘IDX Tech Seminar’를 매달 개최한다. IDX의 대표기술로 대변되는 3초(초지능, 초연결, 초실감)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핵심기술·표준·시장에 대한 R&D방향을 모색하고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제4차 산업혁명과 주요 육성정책 동향
(메가트렌드, 한·중·일·미·유럽, Data Industry)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김갑수 교수
18세기 산업혁명의 중심지는 영국이었다. 그러나 증기기관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선 자동차 산업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바로 세계최초의 자동차 법규, ‘적기조례’ 때문이다. 자동차의 전방 55m 앞에서 반드시 기수가 붉은 깃발을 들고 자동차가 오고 있다고 알려야 하는 이 법규는, 자동차가 사람(기수)보다 빨리 달릴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결국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은 독일 등으로 넘어가버렸고, 적기조례는 지금까지 어리석은 규제가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준비가 한창인 요즘이다. IDX 5차 세미나의 연사로 선 카이스트 김갑수 교수는 적기조례를 예시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기술과 앞선 서비스 발굴에 힘쓰느라 규제와 진흥의 핵심인 정책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데이터 산업(Data Industry) 성장, 정책으로 풀자
김갑수 교수는 제4차 산업혁명을 ‘데이터를 읽어 들이고 연결시킨다’는 말로 설명한다. 인공지능 등과 접목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혁신과 서비스들은 모두 ‘현실세계의 데이터를 사이버 상으로 연결시킨다’는 공통분모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이터의 생산과 활용은 제4차 산업혁명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빅데이터란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데이터를 산업(Data Industry)이라 부르며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데이터 산업을 진흥시키고 글로벌 기업들과의 합리적 경쟁을 일으키는 한편 시장을 창출해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정책이다. 정책은 크게 진흥과 규제 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중국은 2016년 ‘13.5 국가전략형 신흥산업 발전 규획’을 발표하고, 데이터 인더스트리의 핵심이 되는 소프트웨어·IT서비스 분야의 목표생산액을 2020년까지 8조 위안(약 1448조원)으로 삼았다. 우리나라 GDP와 맞먹는 규모다. 또한 빅데이터 관련 산업과 서비스 업종의 수익창출액 목표를 1조 위안(약 168조원)으로 정했다. 데이터 관련 기업들에 대한 방대한 지원을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은 아예 ‘데이터 협조형 사회’를 정책 슬로건으로 삼았다. 데이터를 독점할 수 없도록 규제를 통해 합리적 경쟁을 일으키는 한편, 기업 간 데이터의 공유를 어느 정도 강제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데이터 창출과 관련해서는 자동차 주행기록이나 휴대전화 위치정보 등의 빅데이터를 지식재산권으로 인정, 한마디로 데이터 특허를 통해 보호한다는 파격적인 방침을 내놨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각종 규제로 인해 데이터가 원활히 흐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김갑수 교수는 데이터는 그 속성상 독점이 이뤄지기 쉽기 때문에 외부의 거대 데이터 플랫포머(Data platformer)가 독점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경쟁조차 해보지 못하고 휩쓸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김갑수 교수는 데이터 간의 원활한 공유를 통해 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정책을 시급히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거대 인더스트리의 데이터 독점 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규제 정책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ICT 중견·중소기업의 성장이 혁신을 담보
제4차 산업혁명을 위한 미래구상에 있어 중요한 것은 기업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김갑수 교수는 미래 예측에 관한 연구는 영국이 먼저 시작했음에도 실제로 제4차 산업 혁명의 주도권은 독일이 쥐게 됐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기업이 중심이 되어 기획과 실행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김갑수 교수는 메가 트렌드 체인지에 대한 기획을 정부와 대학, 연구소에서 주도하고 기업에서는 개인 몇몇만 움직인다면 기획단계에서만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반대로 독일처럼 기업이 중심이 되어 플랫폼을 구성하고 기획한다면 그 실행에 힘이 실린다고 말했다.
그 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술과 산업의 안정화 시기에는 대기업이, 산업의 초기 단계에는 중소기업이 혁신을 주도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갑수 교수는 제4차 산업혁명 역시 마찬가지로, 중견중소기업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김갑수 교수는 센서를 이용하거나 임베디드 시스템을 이용하는 중소기업이 거의 없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성공했다는 중소기업 중에 리얼월드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선 기술을 소비할 수 있도록 시장이 커져야 하는데, 김갑수 교수는 대기업의 R&D 투자비중이 늘어나야한다고 말한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매출액 5천 억 이상의 대기업 중에서 R&D 비중이 1%도 안 되는 기업이 전체의 70%에 달한다. 김갑수 교수는 대기업이 R&D 비중을 늘리고 기술소비를 해야 이를 공급할 수 있는 중견, 중소기업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방법 역시 규제와 정책이다.
데이터 산업을 위한 표준 마련, 테스트베드를 통한 기업지원…출연연이 앞장서야
그렇다면 정부와 출연연구원들이 중심이 되어 할 일은 무엇일까? 미국에서는 산업표준을 만들기 위해 테스트베드를 운영하며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데이터 산업을 위해 필수적인 것도 바로 표준이다. 택배 산업을 예를 들면, 스마트한 배송을 위해선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배송을 할 때 통신사와 택배사, 차량 운송의 네비게이션까지 데이터가 서로 공유되어야 하는데, 이 데이터의 플랫폼이 표준화 되지 않으면 각각의 회사들이 A부터 Z까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김갑수 교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같은 출연연이 중심이 되어 이러한 표준화된 플랫폼과 채널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미국과 같이 테스트베드를 다양하고 넓게 운영하며 ICT 중견, 중소기업들이 실증시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규제는 제도가 제도를 보호하는 속성이 강한데, 관련 지식이 쌓여있지 않으면 규제를 개선하거나 신설하기 어렵다. 김갑수 교수는 규제에 관해 과학자들이 연구회를 구성해 오랜 시간 운영하고 아이디어를 제언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글 : 현성은(ETRI 표준연구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