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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0 · March 10 · 2017 · Korean

Wide Interview  ______  박성진 카이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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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과학 콘텐츠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다

갈브레이드가 언급한 ‘불확실성의 시대’는 이제 ‘초불확실성의 시대’로 진화중이다. 현재에 대한 불안함과 미래의 불확실성은 우리 마음을 확실한 것에 대한 갈망으로 끝없이 내몬다. 작년, 공상과학 영화인 ‘인터스텔라’가 큰 인기를 끌었다. 박성진 카이스토리 대표는 이를 두고 불확실성에 질식한 사람들의 관심이 확실함을 주는 ‘과학’에 집중되는 현상이라고 판단한다. 과학을 통해 삶의 불확실성과 투쟁하며 사회와 소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만화와 소설로 세상과 소통하는 박성진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콘텐츠와 기술의 소통, 스토리허브 & 카이스토리

현재 스토리허브와 카이스토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회사는 모두 콘텐츠를 다룹니다. 콘텐츠는 개인이 쾌감과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의 개별이며 총합입니다. 흔히 콘텐츠를 생각할 때, 책, 영화, 영상을 먼저 떠올리실 겁니다. 그런데 지식도 콘텐츠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개인이 콘텐츠를 통해 얻는 만족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즉각적인 만족감입니다. 재밌는 책을 읽거나 동영상을 보았을 때 느끼는 즐거움과 재미로 쾌(快)와 락(樂)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자아의 확장과 불안감을 해소할 때 느끼는 희(喜)와 열(悅)입니다. 지식의 습득, 깨달음을 통해 느끼는 만족감이 이에 속하죠.
스토리허브는 ICT와 스토리텔링이 접합하는 길목을 만들고자 설립한 회사입니다. 불편한 것, 필요한 것에 대해 ‘상상’하고, 그 상상이 구현된 세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를 다시 한 번 더 상상합니다. 현재 준비 중인 웹툰 ‘하늘 편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IoT 세상을 상상했습니다. 만물인터넷이 모을 정보들, 포그(FOG)가 어떻게 쓰일 지도 상상했죠. 그리하여 ‘어느 날, 세상이 세상을 기억하기 시작했다’라는 카피를 시작으로 하는 웹툰 ‘하늘편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늘 편지 속의 세상에서는 모든 사물들이 추억을 기억했다가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그 기억을 공유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갔던 바닷가의 인상적인 바위에 ‘즐거운 추억’을 저장해 두었다가, 언제든지 그곳으로 돌아와 추억을 열어볼 수 있는 세상입니다. 스토리허브에는 그러한 세상을 열 수 있는 기술이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기술이 존재하는 세상을 ‘에뮬레이션’해서, ‘웹툰’과 ‘모바일 세상’에 가상 구현할 뿐입니다. 훗날 우리가 상상한 기술을 누군가 명확하게 구현하여 가상 구현한 세상의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울 것입니다. 그 순간이 바로 스토리허브가 스토리에 기술이 더해지게 만드는 허브로서의 역할을 완수하는 지점입니다.
카이스토리는 KAIST를 졸업한 100여 명의 동문들이 소셜펀딩을 통해 설립했습니다. 모든 콘텐츠들이 OSMU(One Source Multi Use)를 말하는 요즘, 과학과 기술 또한 제품과 산업에서의 쓰임을 넘어 독자적인 문화적 콘텐츠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카이스트의, 대덕단지의, 나아가 세상의 모든 과학과 기술 지식을 보다 재미있게 전달코자 하는 시도입니다. 만화와 동화, 소설 등이 전달의 통로로 활용될 것입니다. 간단하지 않으며 긴 시간이 필요한 시도입니다. 무엇보다 정확한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한 스토리텔러 혹은 큐레이터가 부족합니다. 금전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요. 느리지만 꾸준하게, 점진적으로 카이스토리를 활성화 시킬 계획입니다. 더불어 전문적인 과학 스토리텔러 양성은,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세상이 나서야 할’ 과업입니다.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

많은 분이 과학자에서 소설가, 그리고 CEO로 변신한 이유를 궁금해 하십니다. 처음의 꿈은 소설가도 사업가도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 꿈은, ‘작은 연구소 하나 차려서 거대 로봇 세 대 정도 가지고 우주 침략군에 맞서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로, 박사 학위를 가지면 연구소랑 로봇 몇 대 정도를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줄 알았습니다. KAIST 전자공학과를 입학했고, 대학원은 서울대로 진학했습니다. 대기업 지원의 연구를 논문과 연계해 수행했는데, 기업이 갑자기 연구비 지원을 끊었습니다. 해외에서 관련 연구 성과를 사들여오면서 더 이상 연구를 수행할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대학원을 중퇴하고, 입대했습니다. 어려운 공부보다(저는 정말 공부하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편한 돈벌이를 궁리했습니다. 제대한 후, 아르바이트로 소설을 썼습니다. 첫 소설의 원고료가 당시 대졸 초봉보다 7배 정도 높았죠. 이후 소설가로 전향 아닌 전향을 합니다. 만화 시나리오 요청도 받아 시나리오도 썼습니다. 하지만 항상 마음 한편에 과학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연구를 하고 석·박사를 밟으려면 얼마나 큰 고생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허브의 설립 이전 제조업을 시작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러한 부채의식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했던 사업은 실패합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잘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다른 것이 아닐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잘 하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 새로운 시장이 열렸습니다. 콘텐츠와 ICT가 결합되는 시장이 생긴 겁니다. 저는 기술 개발과 연구, 사람 관리에 소질이 없나 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구현하게 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스토리허브와 카이스토리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작가로 성공했고, 사업가로 실패했으며, 다시 사업가로 재기 중이지만 지금도 실패를 계속 이어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계속 노력하려 합니다. 아시모프의 말을 살짝 비틀어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초등학교를 6년에 걸쳐 졸업합니다. 그 쉽다는 초등학교조차 6년인데, 성공이 어떻게 한 번 만에 가능하겠습니까? 가장 잘하는 것에서 시작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초등학교가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다닌다면 수십 번의 실패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작품 세계

첫 작품은, 무협 소설 「난지사」입니다. 어지러운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 소설은「환환전기」인데, 거의 3,000년에 걸친 무림 세계를 다룬 ‘금시조 월드’의 시작입니다. 금시조 월드는 일종의 ‘거품 우주’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광마」라는 소설에서 끝이 납니다. 대략 200년에 하나씩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SF가 아니라 무협소설이라는 것이 함정입니다. 일반 무협 만화의 스토리 작가로서 수십 편의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웹툰으로는 네이버에 연재했던 「TLT」가 있고요. TLT는 경제, 경영에 대한 이야기들을, 동물을 의인화한 캐릭터로 전달코자 했던 만화입니다.
차기작을 위해 ‘일각수’라는 세계관을 세웠습니다. 1999년에 정해져 있던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하여, 우리와 공존했던 수많은 존재들이 모두 ‘사건의 지평’ 너머 ‘평행 우주’로 떨어져 나갔다는 설정입니다. 덕분에 인류는 멸망의 운명을 피해 지금의 우주로 존재하는 것이죠. 우리는 가끔씩 그렇게 떨어져 나간 세계를 ‘꿈과 상상’을 통해 인지합니다. 그러한 인지를 바탕으로 수많은 작가들이 무협과 환타지 소설을 쓰고 웹툰을 그린다는 설정입니다. ‘일각수ZERO’와 ‘무림알바닷컴’이 소설로 제작 중이며,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웹툰들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일각수의 세계관을 공유하지 않는 웹툰으로는 타짜의 원작자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직접 스토리에 참여하시는,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를 다룬 ‘상해칠천’, 근대사를 바둑과 함께 재조명하는 ‘장생’, 타짜의 새로운 4부작 시리즈인 ‘타짜 더 레전드’ 등이 진행되는 상태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자, ‘사상누각 프로젝트’

저는 소설이나 스토리허브 콘텐츠 제작에 대한 아이디어 대부분을 과학과 기술이 보여주는 미래 비전에서 얻습니다. ‘일각수 세계관’도 평행우주와 휘튼 교수의 M이론에 조심스럽게 다리를 걸친 상태입니다. 과학적 상상은 완전한 뻥보다 더욱 기괴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디어와 창의적 영감은 소설가뿐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필수적입니다. 사실 작가와 몽상가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을 지을 뿐입니다. 모래 위에 지어진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작가는 ‘재미’와 ‘대중성’을 스토리텔링으로 아슬아슬 녹여 넣습니다. 작가의 상상이 재미있다고, 타당하다고, 혹은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과학자들은, 모래 대신 콘크리트를 채워 넣기 시작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카이스토리의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 깊이 알아서’ 생기는 과학자의 상상에 대한 장벽으로부터, ‘별로 알지 못하는’ 작가는 자유롭습니다.
ETRI를 비롯한 많은 연구소는 연구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합니다. 바로 옆에 있던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도는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이야기는 단순히 동화가 아닙니다.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나누는 동료가 갖고 있는 기술과 연구 자료를 찾아, 세상을 헤맬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공유의 시대입니다. 내가 하는 일을 알리고, 남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대입니다. 여력이 허락한다면, 과학자와 작가들을 모아 자유롭게 브레인스토밍하는 모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격주로 상상 주와 구현 주를 둡니다. 상상 주에는 모두가 아무 상상이나 자유롭게 발표하고, 구현 주에는 현실적 실현 가능성에 치열하게 매몰되어 발표를 하는 겁니다. 물론 구현 주에 작가는 거의 발표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깊어지겠죠. 상상 주에 과학자들이 어이없어 할 수도 있겠으나, 충분히 즐거울 겁니다. 이 모임에 [사상누각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드리머(Dreamer)’와 ‘플래너(Planner)’

과학과 기술 지식을 문화콘텐츠화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카이스토리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스카이 레터(하늘 편지)’도 웹툰과 서비스 모두를 7월 이전에 런칭 할 생각입니다. 스카이 레터는 위치 기반, 객체 인식 기술, 증강현실 등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입니다. 스토리허브가 추구하는 ‘ICT기술에 스토리텔링을 담는다’라는 목표를 충실하게 투영한 기획입니다. 우리는 ‘하늘 편지’를 기획한 후, 이 전체 기획과 기술 개발, 서비스 코딩 등의 추진을 (주) 넥스코스로 넘겼습니다. 각자, 잘하는 일을 맡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다음 웹툰과 서비스로는 이미지 처리 기술에 한국 웹툰 작가들의 캐릭터들을 결합시키는 AiOZ(오즈의 앨리스, 혹은 Ai로 만들어진 오즈라는 중의적 의미입니다.)를 진행 중입니다.
미래의 직업은 현재보다 세분화 될 것입니다. 하지만 크게 나누면 ‘드리머(Dreamer)’와 ‘플래너(Planner)’ 두 종류라 볼 수 있습니다. 드리머는 상상하는 사람입니다. 때로 현실로부터 두 발을 뗄 수도 있습니다. ‘이게 불편해. 이런 불편한 점을 해결하는 기술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 라거나 ‘이런 기술이 가능해진 미래의 모습은 이럴 거야. 그럼 이런 기술이 다시 필요해지겠지?’라 상상하는 사람입니다. 드리머는 그러한 기술의 구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상상이 자유로워집니다. 도라에몽의 징구가 제가 본 가장 훌륭한 드리머입니다. 게으른 징구는 잘도 엉뚱한 상상을 해내죠. 플래너는 두 발을 철저하게 땅에 붙이고, 드리머가 상상한 것을 현실에 구현하려 계획하는 사람입니다. 플래너의 선택을 받은 드리머의 꿈은 상상의 영역을 떠나 현실로 튀어나올 자격을 갖춥니다. 현실에서 플래너는 과학자, 공학자들일 것입니다. 드리머는 작가입니다. 스토리허브와 카이스토리는 드리머와 플래너가 서로 발전적 간극을 유지한 채, 소통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합니다.
저는 웹툰, 소설, 그리고 모바일 서비스 기획을 통해, 과학기술이 만들어가는 미래를 ‘에뮬레이션’합니다. 이 일은 드리머의 ‘꿈을 사이버 세상에서 저렴하게 구축하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에뮬레이션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세상에 알릴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혹은 대중들이 어떤 미래의 모습을 가장 ‘선호’하는지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 스토리허브에서 드리머의 꿈이 플래너의 선택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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