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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ol.30 2015.01.09
스페이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핫하다

2015년 7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곳이라면 단연 광주광역시.
7월 3일~14일까지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모여 지구촌 축제,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U대회)를 열었다.
낮에는 스포츠 정신을 발휘한 유니버시아드가, 밤에는 끼와 젊음을 발산한 컬쳐버시아드가 광주를 뜨겁게 달궜다.

그 중 컬쳐버시아드의 ‘핫플레이스’로 인정받으며 U대회 선수단들 사이에서 광주투어 필수코스였던 곳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미술가, 기획자, 인문학자, 문화예술인이 의기투합해 만든 상생 프로젝트 '대인예술夜시장'이다.
남녀노소 취향저격하는 만물과 풍물이 넘쳐나는 이 문화예술장터로 밤마실을 나섰다.


만남

위태로운 시장과 방랑하던 예술

광주 동구 구도심에 위치한 대인시장은 1959년 5월에 공설시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지리여건이 광주역과 광주버스터미널, 광주시청, 전남도청까지 밀집된 곳이라서 1970~80년대에는 호남 최대의 전통재래시장으로 사람들이 북적였지만
광주역과 광주버스터미널, 전남도청의 이전과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투, 대형 마트 소비문화 형성으로 인해 손님도 점포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사람 냄새로 진동하던 시장이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 2008년 제7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면서 공공미술 ‘복덕방 프로젝트’로 활기를 되찾게 됐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작업 공간이 없는 예술가들에게 빈 점포를 임대해주고, 허름한 폐 점포들을 작업실과 갤러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낡고 오래된 담벼락을 캔버스 삼아서 예술가들은 자유롭게 창작욕을 쏟아 부었고,
어느새, 땀방울로 얼룩진 인생살이 현장으로 화석이 될 뻔 했던 시장은 자유분방한 예술촌이 되었다.
시장과 예술, 갸우뚱하게 되는 이 신선한 조합! 둘은 이렇게 만났다.

저녁 6시 30분. 시장 구경의 바람직한 준비 자세는 배부터 든든히 채우는 것.
대인예술시장의 대표 먹거리 천 냥 잔치국수 한 그릇과 눈앞에서 뚝딱 만들어주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전을 먹고, 본격적으로 둘러보았다.


동고동락

물과 기름에서 찹쌀떡 궁합으로, 상인과 예술가

고등어가 누워있는 생선가게 옆에 LP판이 걸려있는 칵테일 바가 있고, 참기름 냄새 솔솔 나는 떡집 옆에 현대미술 갤러리가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이색적인 상황이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가게마다 주인장 캐리커쳐가 문패처럼 걸려있었는데, 알고 보니 시장 예술가들이 점포마다 상인들을 그려서 기증한 것이었다.
‘홍어찜, 홍어회 맛나부러~’ 같은 메뉴판과 가격표 역시 그들의 손길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수제 향초 점포 앞에서 코를 킁킁대고 있는데, 옆에서 작은 감탄사들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작가가 직접 제작한 3D프린터로 즉석에서 피규어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정감가는 살림살이와 잡동사니에서부터 예술혼이 담긴 예술작품들까지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것도 다 있는 이 곳.

시장 내 예술의 거리 모퉁이에 있는 ‘한 평 갤러리’에서 수공예 소품 및 그림들을 감상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설명을 해줬다.
대인예술시장 입주 예술가 ‘조은솔’ 작가로 그녀가 그린 작품들도 갤러리 한 쪽 벽을 채우고 있었다.
고맙게도 자신의 작업실이자 방인 창작스튜디오 ‘다다’에 초대해줘서, 그녀를 따라 시장 횟집이 모여 있는 건물의 주차장 5층으로 향했다.
대학교 기숙사를 옮겨 놓은 것 같은 ‘다다’는 각 방마다 예술가들이 입주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조은솔 작가의 방 창문을 통해 보이는 대인예술시장의 야경은 세상에서 가장 소탈하면서도 눈부시게 예뻤다.

400여개의 점포와 100여명의 예술가들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산다는 것이 처음부터 잘 맞았던 것은 아니지만,
정을 나누며 울고 웃는 사이 그들은 마음 맞는 이웃이 됐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곳 시장 예술가들의 작품에는 삶의 향기들이 진하게 묻어났다.
어느새 상인들은 낭만적 현실주의자가 되고, 예술가들은 현실적 낭만주의자가 되어있었다.


우리라는 하나

달밤에 함께, 별장에서 놀장!

“쓰담쓰담쓰담쓰담 해볼까요~ 빠바밤 빠밤빠바바밤”
밴드 훈훈한 성치가 부르는 10cm의 ‘쓰담쓰담’ 노래 한 곡으로 시장 분위기는 심하게 달달해졌다.
6월~ 11월까지 매월 둘째 주 금, 토요일에 열리는 대인예술夜시장 ‘별장’은 이틀 동안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광주 문화 아이콘.
60년 전통 시장의 활성화와 서민 경제 도모를 위해 출발한 이 밤문화는 시장 상인과 상주 예술가들이 함께 준비하고 손님들과 다 같이 즐기는 장이다.
구경하다가 발견한 노상 카페에서 샹그리아를 한 잔 사마셨는데, 사장님께서 서비스라며 더치 커피 한 병을 주셨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적어도 이 곳 대인예술시장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 듯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서로 나누고 베풀며 사는 것을 시장 골목 구석구석에서 느낄 수 있었다.
U대회 마지막 날, 눈동자 색이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상인과 예술가 손님, 세 주체가 하나 된 이 곳에서 올려다 본 달은 유난히 참 예뻤다.

무엇보다 대인예술시장의 성공요인은 ‘상생을 추구하는 공동체 정신’이다.
자신들의 인생살이와 전혀 다른 색깔인 예술가들의 삶을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맞아준 상인들.
그리고 그런 마음이 감사해서 어떻게든 서로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살갑게 먼저 다가간 예술가.
삶과 예술에 경계는 없다는 발상이 시장과 예술을 공존하게 하고,
색다른 장터이자 세대교체가 아닌 세대화합을 꿈꾸게 하는 꿈터를 만들었다.
별이 빛나는 밤, 꿈같은 불금을 원한다면 대인예술夜시장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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