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군을 버리는 왕, 전투를 두려워하는 장수, 탈영하려는 병사.
사면초가에 내몰린 장군은 아무것도 베풀어준 것이 없는 조선을 위해
백의종군하여 7년의 임진왜란 기간 동안 23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다.
난세를 이끈 구국의 명장 '이순신 장군'의 이런 초인적인 힘은
“장수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라고 굳게 지킨 애국충절이었다.
통제영의 역사가 고장의 정신을 이루는 기틀이자 경제 기반이 되는 곳,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찾아 호국의 숭고한 역사지로 유서 깊은 통영을 찾았다.
통영은 이순신 장군이 한산해전을 승리로 이끈 곳으로 최초의 통제영이 자리 잡은 구국의 땅이다.
조선왕조 유일의 계획 군사도시로서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고 통제영 문화가 꽃을 피우던 시절이 있었다.
통영이라는 지명도 ‘삼도수군통제영’(1604년에 설치되어 1895년에 폐영 될 때까지 전라, 충청, 경상의 3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부)에서 유래되었다.
통영 사람들이 역사적, 문화적 자긍심이 대단한 이유다.
또한 한반도 남단의 리아스식 해안(육지의 침강 또는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의 일부가 바다 속에 잠겨 이루어진 복잡한 해안)과
526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통영은 최고의 비경을 갖고 있어서 동양의 미항, 한국의 나폴리라고도 불린다.
미륵산
바다를 버리는 것은 조선을 버리는 것입니다
통영에 도착해서 한려수도를 한 눈에 담기 위해 제일 먼저 미륵산에 자리한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로 향했다.
울창한 숲과 계곡, 장엄한 바위산, 신비로운 다도해, 고즈넉한 고찰까지 다 가진 산이 바로 미륵산(461m)이다.
또, 한려수도란 한산도에서 여수에 이르는 아름다운 300리 바닷길을 일컫는다.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는 선로 길이가 1975m인 국내에서 가장 긴 곤돌라로
케이블카를 타고 산 중턱을 지나자 녹음 짙은 숲과 함께 통영항이 보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한산대첩 전망대부터 정상까지는 205m를 올라야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편백나무의 향이 코끝을 찔렀다.
편백나무 오솔길이 끝나자 양 옆으로 칡꽃 향이 이어졌다. 야생화 꽃길이다.
한산대첩 전망대, 신선 전망대, 통영상륙작전 전망대를 거쳐 드디어 미륵산 정상에 도착.
사방을 둘러봐도 거칠 것 없이 확 트인 미륵산 정상은 국립공원 100경 중
최우수 경관으로 선정된 위엄답게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장관이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절경을 마주하고, 바다의 물길을 따라 섬과 섬의 품속을 파고드는 느낌을 받았다.
미륵산 정상에서는 맑은 날이면 다도해는 물론이고 일본 대마도, 지리산 천왕봉, 여수 돌산도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빨려들 것 같은 깊고 푸른 섬과 바다를 보고 있자니 이순신 장군의 말이 사무쳤다.
정유재란 당시, 칠천량해전에서 전멸하고 사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 수군들.
이런 상황에서 육군에 합류하라는 왕을 이순신 장군은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바다를 버리는 것은 조선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 날의 충무공이 절대 져버릴 수 없었던 이 망망한 바다는 지금의 후손들에게 마르지 않는 애국심이 되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구안
적은 백여 척이 아니라, 다만 백 개의 한 척일뿐이다
미륵산 풍광을 한껏 즐기고 산을 내려와 다음 목적지는 강구안.
동양 최초로 만들어진 해저터널이 보존되어있는 통영운하를 통영 8경 중 가장 아름다운 야경으로 꼽히는 통영대교를 타고 건넜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강구안이다.
통영의 속살을 구석구석 살펴 볼 수 있는 강구안은 푸른 쪽빛 바다를 안고 있는 아늑한 항구다.
중앙동과 항남동 등의 해안 일부를 ‘강구안’이라고 부르는데, 개울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라는 말이다.
한국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 불리며 산언덕에 걸터앉은 달동네 벽화마을 동피랑을
등지고 바라본 통영 남해 바다는 소탈한 정이 물씬 묻어났다.
강구안 골목을 거닐 때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느려졌다.
오래된 대장간과 쌀 집, 제철소 등 사람냄새 나는 소소한 삶의 향기들을 음미하며 걷느라.
오후의 햇살이 비춰 물결이 반짝이는 바다를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항구에 정박해 있는 거북선과 조선군선을 발견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거북선은 세계 해군 역사상 유례가 없는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순서대로 전라좌수영거북선, 통제영거북선, 한강거북선, 판옥선이 잔잔한 바다 위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이 배들을 보고 있자니 이순신 장군의 해상전투 일화가 생각났다.
임진왜란 6년.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으로 출전한 후 단 12척의 함선으로 133여척에 달하는 왜군 전함을 무찌른다.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투 '명량해전'이다.
명량해전은 단순한 칼과 칼의 전투가 아니라 울돌목의 물길과 지형을 이용한, 이순신 장군의 기지가 발휘된 과학적 승리다.
이 거대한 역경 앞에서 장군은 수군들을 지휘하며 전쟁영웅다운 명언을 한다.
“열두 척의 배로 일자진을 펼쳐 적의 선두를 부수면서 물살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지휘 체계가 무너지면 적은 백여 척이 아니라, 다만 백 개의 한 척일뿐이다.”
이순신 공원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강구안을 둘러보고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깃든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이순신 공원으로 갔다.
망일봉 자락에서 장군의 위용을 뽐내고 있는 이순신 공원에서는 남해 바다와 한산대첩의 격전지 한산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충무공 동상과 고즈넉한 해안 절벽 산책로가 통영의 푸른 바다와 잘 어우러져 마음을 다독여주는 듯 했다.
시원한 바다 내음과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따라 이순신 장군 동상이 가리키는 곳으로 한 발짝 다가서보니 천자총통이 있었다.
이 대포는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부르짖으며 싸우던, 북소리 요란하던 그 때 그 역사 속으로 데려다 놓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과거가 마치 어제 일처럼 지평선 너머에 그려지며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되새기게 했다.
전쟁 영웅 이순신에서부터 인간 이순신까지,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다닌 통영에서의 하루.
이순신장군은 이 세상의 난관을 비켜 가지 않고 한없이 넓게 그대로 받아들였다.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대의를 품고 마주했다.
그리고 마침내 영웅을 뛰어넘어 성웅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부터 메르스 공포까지 우리 사회에 불안정함이 떠올랐다.
지금 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 후손인 우리들에게
이순신 장군은 그 누구보다도 가장 그리운 위인이다.
나라를 위한 희생이 무엇인지 진정한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준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단념하지 않는다면 살 길은 있다. 삶은 단념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호국보훈의 달 6월, 장군의 신화가 살아 숨 쉬는 통영 한려수도로 가보자.
그 바다에서 현실의 고난을 뚫고 나가는 새로운 힘을 회복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