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이 문장대로라면
윤광준 CEO는 한번뿐인 인생에서 세 개의 알을 깨고, 세 번의 새로운 세상을 펼친 변신의 귀재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전자공학(반도체전공) 석사, 포항공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초고주파전공) 박사를 취득하고
1987년 ETRI에 입사하여 반도체 연구 1세대로 무선RF부 핵심 칩을 개발,
1998년 FCI 벤처 회사 창업, 2007년 회사를 NASDAQ 회사에 1억불로 성공적인 M&A,
현재 가평 이뜨랜 리조트·레저 사업, 나날요양원 사업과 함께 ‘들이대학교’라는 커뮤니티 부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스스로 만들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에 끊임없이 도전해온 윤광준 CEO.
인생의 갈림길마다 안주가 아닌 변화와 성장을 택한, 삶의 정수가 담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ETRI 동문 여러분, 윤광준입니다.
ETRI는 제 첫 직장입니다. 1987년 2월에 입사하여, 당시 반도체연구단 화합물반도체연구부에서 근무했습니다. 1998년에 국내 초고주파 칩 국산화를 위해 FCI라는 벤처회사를 창업하면서 연구소를 나오게 됐지만, 여전히 ETRI는 제게 친정과 다름없는 곳입니다.
제가 몸담았던 곳이 동문 여러분의 헌신과 열정으로 나날이 발전하여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ICT 연구기관이 된 것을 보니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제게 이런 자부심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FCI를 2007년에 NASDAQ기업에 M&A시키고 현재, 초기 기업 투자와 컨설팅 업무, 리조트 사업(이뜨랜리조트, 가평), 요양원 사업(나날요양원, 대전)등을 하고 있습니다.
집념의 연구원|실패는 성공의 껍질이다
1987년만 해도 국내에 반도체 공정에 관한 아무런 관련 기술이 없던 시절이네요. 그러다보니 연구실에서 단위 공정들을 개발 할 때도 부족한 연구 실험 시설 때문에 홍릉 KAIST로 출장을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남의 연구실을 빌려 실험을 해야 하는데 대학생들의 데모가 심했던 때라서 가스 공급이 잘 안 돼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실험을 했었습니다.
그 후 90년대 초반이 되면서 연구소에 시설들이 갖춰지고 설계와 제조공정들을 직접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고, 1996년에 국책과제로 휴대폰용 초고주파칩 개발을 수행하게 됐습니다. 그 때가 우리나라에서 통신용 반도체 연구는 초창기였고, 제가 반도체 연구 1세대인 셈입니다. 그래서 초고주파 반도체 기술인 GaAs 화합물반도체 기술이 국내에 전무한 시설이었기 때문에 각 제조공정들을 직접 개발하고 이 공정을 이용해서 각 소자(트랜지스터, 인덕터, 캐패시터, 저항)들을 설계하고 제작해야했죠. 그리고 이를 이용해 집적회로(IC)를 설계하고 칩을 제작해서 측정하는 이 과정의 수차례 시행착오와 반복 끝에 마침내 성공! 최종 제작한 칩을 휴대전화기에 장착하여 통화버튼을 누르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을 때 그 쾌감과 성취감과 보람은 잊지 못할 제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죠. 그 때 ‘하면 되는구나’를 경험하고 나니까 자신감이 확 붙었습니다. 연구 활동 외에도 스키 동호회 2대 회장과 국내 검도계의 최고수셨던 서정학 9단 범사님을 모시고 검도 동호회 회원으로도 활동했던 즐거운 추억도 있습니다.
벤처회사 CEO|리더는 비전을 파는 사람이다
벤처를 시작할 당시 휴대폰 무선 핵심부품을 퀄컴이나 맥심 등 외국회사로부터 전량 수입하는 상황인데도, 힘들게 개발된 제품이 국내기업으로 기술 이전되지 못하고 사장되게 되는 안타까운 그 때의 현실이 직접 나서서 창업을 하게 된 배경입니다. 처음 시작은 용감하다 못해 무모했습니다. 석사를 갓 졸업한 연구원 한 명과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직원 한 명으로 시작했으니까요. 그리고 KAIST 대학원생을 아르바이트생으로 활용하다가 졸업한 후에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또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을 찾아가 직원으로 스카우트 해오기도 했고요. 이렇게 5년 정도 지나서 직원들이 50명 내외가 되고 초기 개발 제품도 출시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외국 경쟁사와 비교하면 축적된 경험, 우수한 인재들, 마케팅, 자금력 등 모든 면에서 열세였지만 그 와중에 제품을 출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시장 반응은 우리 생각을 빗나갔습니다. 시장에서 우리 제품은 외국 제품 가격을 낮추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 되었습니다. 가격 싼 국내 개발제품이라는 카드로 내세워 기존 외국회사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 가격 협상용으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회사 매출은 개발비도 회수하기 어려웠죠. 계속되는 적자의 난관을 국책과제와 투자유치를 통해 버텨내면서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고군분투 한 결과 성능이 더 우수한 제품이 개발되고 시장에서 조금씩 찾기 시작하면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제품특성상 시장에서 가장 뛰어난 제품을 개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 확보가 제일 중요했습니다. 결국 인사가 만사인 것 같아요. 국산화와 벤처성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바라보고 함께 고생한 직원들이 있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성공들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팀워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황이 허락 되는대로 직원들과 여행도 가고 체육대회, 스키장, 워크샵 등을 함께 즐겼습니다.
리조트·레저 CEO|날아오른 새에게 국경은 없다
처음 회사를 매각한 직후 중압감에서 벗어나 정말 자유롭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2~3년 시간이 흐르니 성공 뒤에 찾아오는 허탈감, 허무감 같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 나눔을 떠올리게 됐어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사업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평소에 레저를 좋아했기 때문에 제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리조트 및 수상레저 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설계부터 공사, 조경, 인테리어, 운영 등 모든 것을 몇 년간 직접 구상하고 작업하여 2년 전 이뜨랜리조트를 오픈했습니다. ‘이뜨랜’이라는 말은 'The others'라는 뜻입니다. 이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울리며 서로 긍정적인 기운을 나누고 교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IT와 리조트 사이에 거리가 멀어서 사람들이 많이 의아해 하시지만 사업의 본질을 보면 서로 공통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전 비즈니스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되고 있고요. 또 다른 비즈니스로는 대전역 앞에 나날요양원을 1년 전에 오픈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요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때 요양원 시설과 환경에 대해 많이 알게 됐습니다. 쾌적하고 좋은 시설도 중요하지만 요양보호사들의 서비스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요. 요즘 많은 노인 분들이 요양시설에 계시다가 돌아가시는데 가족들이 편하게 모실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오픈 1년 만에 많은 분들이 편안하게 잘 지내고 계십니다.
진정한 나|삶의 본질은 선한 영향력
100세 시대에 인생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정말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공적인 삶이란 내가 나눌 수 있는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전파시키면서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어렵더라도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라는 생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런 의미로 승일희망재단(루게릭병 재단), 성남 이로운 재단, 성남 장학 재단 등의 설립, 운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때가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ETRI를 떠올리면 항상 아름다운 캠퍼스와 정다운 사람들이 생각나서 행복합니다. 요양원 때문에 대전에 자주 내려가는데 가끔씩 연구원을 방문하여 옛 동료들도 만나고 함께 좋은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서 첫 직장이자 가장 최고의 연구원으로 발전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주시는 동문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묵묵히 기술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저도 미력하나마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리조트에도 편하게 쉬러 오시고 요양원에도 부모님을 비롯해 친지를 모시게 되면 가족처럼 항상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ETRI 동문 여러분께 인사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항상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