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을 전해주세요.
작년 8월 퇴직 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지 만 1년이 되었네요. 캠퍼스가 서울 광진구에 있어서 주말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지내고 있습니다. 대전이 고향인 것도 아닌데 15년 가까이 살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는지 집을 옮기기가 싫더군요. ETRI에 다닐 때도 늘 분주하게 이곳저곳 다녔는데, 여전한 걸 보면 역마살이라도 타고난 모양입니다. 특별하게 즐기는 취미생활은 없고, 좋은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ETRI 사람들과도 자주 만나는데 얘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SNS로도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특히 제자들과는 SNS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학생들의 고민거리가 뭔지, 관심사는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좋은 자료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40대 중반에 접어들다 보니 요즘은 부쩍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운동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ETRI에 재직하며 가장 보람된 성과와 인상 깊은 추억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저는 ETRI에서 많은 것을 이뤘습니다. 14년 동안 쉴 새 없이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 제 인생에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글로벌마케팅팀장 시절 세계 각국을 다니며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의 해외진출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한번은 RFID 태그칩 기술을 말레이시아의 산림자원관리에 적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말레이시아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산림부장관의 요청으로 직접 밀림에 들어가 고무나무에 RFID 태그칩을 붙여 시연을 했었지요. 무시무시한 모기와 난생 처음 보는 곤충들 때문에 곤혹을 치렀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기술예측연구팀장 시절에도 기억에 남는 일이 많습니다. 국가적으로 미래 먹거리 창출에 대한 관심이 높을 때였는데, 당시 원장님의 지시로 기술예측연구팀이 신설되면서 제가 팀장을 맡게 됐던 겁니다. 저를 포함해 실제 기술예측연구에 투입된 팀원은 고작 4명이 전부였지만, 5년, 10년 뒤 ETRI와 대한민국의 ICT 미래 청사진을 그린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열정적으로 연구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일당백을 한 거죠.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일이 많았습니다. ETRI에 근무하는 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죠. ETRI에서 많은 것을 이뤘고 동료들과 정도 많이 들었기에 교수임용 소식을 듣고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마지막 출근하는 날 짐을 싸서 밖에 나와 운동장에 앉아 있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때 한 선배님이 다가와 “송박사, 수고 많았어”라며 격려해주시더군요. 지금 그때의 결정에 후회는 없지만 요즘도 ETRI를 지날 때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Q. 대학에서는 어떤 강의를 맡고 계신지 소개해주세요.
제가 몸담고 있는 건국대 기술경영학과는 국내최초의 기술경영학과입니다. 대학원이 아닌 학부 과정에 편성된 케이스는 저희 학교가 유일하지요. 현재 학부 및 석박사, 기술경영MBA(MOT-MBA) 과정 모두 운영하고있는 기술경영분야에서 국내최고라고 자부합니다. 교수진 전원이 출연(연)에서 다년간 연구 및 실제 기술벤처기업을 운영한 경력을 보유한 것도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술혁신을 위한 경영방법을 익히고 현장 응용능력을 기르는 데 목표를 두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기술혁신경영, 국가기술경영, 벤처기술경영과 관련해, 기술경영, 기술경제 및 정책, 기술전략, 하이텍마케팅, 기술사업화, 기술벤처 등과 관련된 다양한 강의가 개설돼 있는데, 그 중 정보통신, 기술융합 분야의 강의들은 감사하게도 거의 제가 맡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기술경영이라는 학문은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른 혁신기술을 그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에 나온 책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강의는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매 시간 강의자료를 신문과 잡지 기사, 관련 논문, 각종 동영상 등을 활용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1시간 강의하기 위한 자료를 준비하려면 4~5시간씩 걸릴 때도 있습니다. 융합 혁신기술 같은 생소한 내용을 다뤄야 할때는 역발상으로 오케스트라의 연주 동영상을 활용하여 기본 개념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인문사회융합이 기술경영학의 큰 화두이기도 하니까요. 우리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만큼 졸업 후에 현장에 나갔을 때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주된 강의 과목이 기술경영혁신, 기술융합, 기술사업화 등 모두 ETRI에 있을 때 주로 경험했던 내용들이기 때문에, 강의할 때나 학과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ETRI에서의 경험을 100% 활용하고 있습니다. ‘ETRI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얘기하면 학생들도 다 귀 기울여 듣고, 동료 교수님들도 믿고 따라주십니다. 졸업후에 ETRI에서 일하고 싶다는 제자들도 많은데, ETRI에 들어갔을 때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Q. ‘제자들과의 허물없는 소통’ 비결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되고 싶은 교수의 모습은 학생들과 소통하는 교수입니다. 그래서 강단에 서서 혼자 얘기하는 게 아니라 교수와 학생들이 서로 묻고 답하고, 서로 토론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이 언제든 찾아와 상담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늘 연구실을 개방해놓습니다. 지난 학기에 80회 정도 상담을 했는데, 아이들이 정말 대화에 목말라 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SNS을 통해 상시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메일은 기본이고, 카카오톡, 페이스북, 행아웃 등 그들에게 친숙한 모든 채널에 대화의 공간을 만들어놨습니다. 제자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으면 가급적 30분 내로 답장을 보내주지요. 꼭 교과내용에 대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얘기나,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죠. 그러다보니 수업준비 할 시간이 부족해 매주 월요일마다 밤을 새우곤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합니다. 대학교수의 역할을 구분해보면 강의, 연구, 학생지도라는 부분이 있는데, 강의평가도 중요하고 연구실적에 대한 압박도 크지만, 학생지도만큼은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Q. ETRI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말씀 남겨주세요.
학회, 포럼 등에서 IT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들어보면 ETRI는 열심히 하는 연구기관, 좋은 성과를 내는 연구기관이라고들 평가합니다. 또한 ETRI 출신이라고 하면 어디서나 환영받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내부적인 대우는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연구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충분한 보상이 뒷받침 된다면, 현재보다 더 월등한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열린 소통의 문화가 필요합니다. 즉 더 많은 연구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믿고 맡기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 ETRI는 융합을 주도하는 연구기관인 만큼 열린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 연구자들에게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Q. 교수로서 제2의 인생에 대한 포부와 계획은 무엇인가요?
제 목표는 세계적 석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했으니 그만큼 성과에 대한 부담도 큽니다만, 학교에서 인정받는 교수보다 학생들에게 영향력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교수가 아닌 가까운 선배처럼 허물없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졸업한 뒤에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바람은 ETRI 출신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도 가끔 휴대폰에 저장해놓은 ETRI tag(사원증) 사진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면 ‘ETRI에 근무하다 지금은 건국대에 있는 송영화’라고 소개하곤 합니다. ETRI 출신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만큼 ETRI의 이름을 빛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