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먼저 웹진 독자와 ETRI 임직원들에게 인사말씀과 근황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올해로 ETRI가 설립된 지 38년이 되었지요. 문득 날을 헤아려보니 제가 연구단장을 맡았던 TDX 개발을 본격 시작했던 것도 32년, CDMA 개발을 시작한 것은 22년이나 지났더군요.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ETRI 임직원 여러분, 그리고 ETRI 동문 여러분 모두 웹진을 통해서나마 인사를 전할 수 있어 기쁘고 반갑습니다.
Q. 현재 ETRI 동문회장을 맡고 계신데요, 주요 활동 사항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ETRI는 조직이 방대하기 때문에 조직별 모임이 많습니다. 저 역시 이동통신연구단 출신 모임인 ‘이수회’ 등 몇 개의 모임에 속해있었고요. 그러다 유완영 박사가 개별적으로 운영하던 조직별 동문 모임들을 한 데 모아 전체 동문회를 창단해 그가 초대회장을 맡았고 3년 전부터 제가 그 뒤를 이어 동문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동문 홈커밍 행사와 동문포럼 위주로 동문회 활동이 이루어졌지만 최근 전략기획본부와 홍보부의 도움으로 동문들의 연락처 확보도 거의 마치고 올 2월 중순에는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해 본격적인 활동을 추진해 나갈 생각입니다.
Q. 창조경제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 향후 ETRI의 역할과 미션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ETRI는 출연연으로서 기업이 못하는 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MS, 애플 등에 의존해 왔던 컴퓨터나 휴대폰 OS(운영체제)를 국산화시킨다든지, 곧 다가올 5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개발하는 등 국익을 창출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연구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전력난이나 대형 재난재해에 대한 미션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즉 대한민국에 블랙아웃이 벌어질 경우 큰 문제를 야기할 통신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강구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말한 것들은 제가 잠깐 생각해본 것들입니다만 꼭 ‘이것이다’라는 것보다 ETRI가 앞으로 해야 할 역할들을 미리 생각하고 앞서 대비했으면 하는 바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Q. 재직 당시에 보람됐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TDX 개발사업은 본격적인 연구개발이 시작된 1977년 당시 우려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오명 체신부차관의 추진으로 무려 240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확보했지만 막대한 사업비에 비해 성공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TDX는 극소수 선진국만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국내 기술로 TDX를 개발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5년 뒤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1981년 시험기가 제작돼 1982년 시험운용을 시작했지요. 그리고 TDX-1 이후 TDX-1A, TDX-1B, TDX-10으로 이어지면서 용량과 성능을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TDX 개발 당시 6개월 동안 꼬박 밤을 새웠던 기억이 납니다. CDMA 개발 때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이 팽배했고, 미국 벤처회사였던 퀄컴과 공동개발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빠듯한 일정에 그야말로 밤낮없이 연구를 계속했죠. 그 결과, 1994년 4월 말 우리가 개발한 CDMA 시스템으로 첫 통화 성공에 이르렀습니다. 처음 CDMA 개발에 성공했다고 했을 때 기자들조차 믿지를 않아 새벽 5시에 연구원으로 몰려온 기자들에게 설명을 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Q. 특히 기억에 남는 추억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밤샘을 많이 하다 보니 고생도 됐지만 서로 의지해서 연구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단장으로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은 요소 기술을 맡은 각 팀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유기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 그리고 연구원들을 독려하고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맙게도 모든 연구원들이 잘 따라주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즐겁게 연구했습니다. 고생하는 연구원들이 안타까워 집에서 야식을 만들어다 같이 나눠 먹고, 밤을 꼴딱 새우고 해장국집에서 수십 명이 새벽밥을 같이 먹던 생각도 나네요. 힘든 시기를 함께 했기에 더욱 애틋하고 이따금 그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아무래도 TDX-1 개발 후 4개 업체에서 교환기를 만들고 ETRI가 150만 개의 부품에 대한 품질보증을 해 1년 뒤 가평, 전곡, 고령, 무주에서 동시 개통식을 가졌을 때입니다. 그때는 정말 감격적이었습니다.
Q. 1997년 현대전자산업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신 후 현대시스콤 대표, 소암시스텔 대표 등을 역임하셨는데요, ETRI 출신으로서 도움이 되었던 점이나 뿌듯했던 일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세요.
1997년 현대전자산업으로 자리를 옮겨 CDMA 무선기술 개발을 책임지고 열심히 뛰었습니다. CDMA 뿐만 아니라 위성사업, 핸드폰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ETRI에서와는 또 다른 보람도 있었죠. 하지만 IMF 외환위기 여파로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들을 매각하면서 저는 큰 결단을 하고 현대그룹을 나와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사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ETRI에서 비롯된 기술과 경험이 토대가 되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TRI를 떠난 후에도 늘 ETRI의 선전을 응원하고 박수쳐왔습니다. ETRI의 38년 역사에서 많은 성과들이 있었지만 1980년대에 TDX 전자교환기 개발, 1990년대에 CDMA 이동통신 시스템 개발을 성공시켰고, 2000년대에는 지상파 DMB 기술 개발과 세계 최초 와이브로 상용화가 그 뒤를 이어 ETRI의 위상을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2010년대, 2020년대를 빛낼 어떤 기술들이 탄생할지 기대가 큽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함께 갑오년을 맞아 덕담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경영보다는 과학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 과학계 원로들이 함께하는 IT리더스포럼에서 대중 강연도 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한국공학한림원에서 2020년 주역이 될 대표기술 선정에 참여하였지요. 후배들이 더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원로들의 지혜를 모으고 힘을 실어주는 데 힘쓰고 싶습니다.
이제 2년 후면 ETRI가 40주년을 맞게 되는군요. 임직원 모두 큰 목표를 향해 결속하여 하나 되는 ETRI를 만들어가길 바라며, 저 또한 자랑스러운 ETRI 동문으로서 늘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