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야문명 천문대에 녹아든 우주
- 엘 카라콜 천문대, 쿠쿨칸 사원
Vol.257 November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미래를 점치고, 계절의 변화를 읽어냈던 사람들이 있다.
바로 마야인들이다.
그들은 시대를 뛰어넘는 천문학과 수학적 지식으로 고도의 문명을 구가했다.
건축물 하나하나에도 그들은 의미를 새겨넣었고, 우주의 원리를 담아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 ‘베일에 싸인 문명’ 등 마야인과 마야문명을 수식하는 말들은 다양하다. 20세기 이후부터 시작됐던 고고학 연구의 미흡함과, 16세기 스페인의 정복을 통해 마야와 관련된 책을 불태운 것이 마야문명을 더 신비롭고 미스테리하게 만들었다.
마야문명은 기원전 2,000년 옥수수 농업으로 시작된 문명이다. 현재는 700만 정도의 마야 원주민이 멕시코와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 마야문명은 하나의 도시를 말하는 것도, 하나의 제국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기원전 2,000년부터 스페인 정복이 있었던 16세기 중반까지 멕시코 남쪽과 과테말라 지역에 있었던 도시국가 전체를 마야문명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이들이 마야문명을 흥미로워하는 이유는 단연, 시대를 뛰어넘는 그들의 건축양식과 천문학, 수학적 능력 때문일 것이다. 포장도로도 없이 마야인들은 커다란 규모의 석조 건축물을 세워나갔다. 마야 최고 대도시라 물리는 페텐의 밀림 속에 있는 티칼은 신전을 비롯한 궁전, 승원 등의 석조건축물이 3,000개 이상이나 된다. 게다가 마야인들은 그리스·로마 시대 때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0(Zero)의 개념을 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20진법의 숫자 체계를 사용했다. 마야인들이 측정한 해, 달, 금성의 주기는 현대 주기와 오차가 크지 않다. 1년이 365.2420일이라 측정했다. 현대에 와서 측정한 결과 365.2422일로 밝혀져 그들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알 수 있다.
쿠쿨칸 사원 전경
마야인들은 자신들의 천문학적 지혜를 건축물에도 녹여냈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쿠쿨칸 사원이다. 마야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치첸이트사에 있는 쿠쿨칸 사원은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피라미드 한 면에는 91개의 계단이 있는데, 네 면에 있는 계단의 개수를 모두 더하면 364개가 된다. 여기에 꼭대기에 있는 제단을 포함하면 1년을 뜻하는 365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거대한 달력과 같은 이 사원의 방향과 각도는 태양의 이동 궤적을 파악해 설계됐다.
1년에 2번, 낮밤의 길이가 동일해지는 시기인 춘분과 추분에 쿠쿨칸 사원에는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오후 3~4시부터 계단 가장자리에 그림자가 생기며 뱀이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형상을 하기 때문이다. 마야인들은 이 뱀이 신성한 우물로 향해 생명의 비를 내려준다고 믿으며 신성한 종교적 의식을 행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제단은 특정 날짜와 위치에 태양이 떠오르거나 질 때, 빛이 제단 입구를 통과하도록 설계됐다. 마야인들은 이렇게 천체의 위치와 계절의 변화를 파악해 파종의 시기를 분별했다.
엘 카라콜 천문대 전경
엘 카라콜 천문대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페인어로 ‘달팽이’라는 의미가 있는 엘 카라콜. 탑 내부가 달팽이 껍데기처럼 둥글게 말아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엘 카라콜은 3층으로 구성돼 있다. 1층은 기초 플랫폼, 2층은 관측실, 3층은 돔 형태의 지붕이다. 마야인들은 2층 관측실에 나 있는 여러 개의 창문을 통해 천체를 관측했다.
이곳에서 마야인들은 춘분과 추분, 하지와 동지, 금성의 운행 주기, 달의 위상 변화 등을 관측하고 예측했다. 특히 마야인들은 금성을 전쟁의 신과 연관 지어 생각했다. 그래서 금성의 움직임을 통해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렸다. 유명한 사실이지만, 마야인들은 2개의 달력을 사용했다. 하나는 1년을 260일로 나눈 촐킨(Tzolk’in)력, 또 다른 하나는 1년을 365일로 나눈 태양력 하아브(Haabʼ)력이다. 마야인들은 이 두 가지 달력이 맞물려 돌아가는 방식을 통해 52년을 하나의 ‘달력 원 주기’로 삼았다. 천체 관측을 통해 만든 마야인의 달력은 사회 전반을 지배할 만큼 영향력이 있었다. 농부들은 하아브력으로 파종과 수확 시기를 정했고, 사제들은 촐킨력으로 제사 일정을 세웠다. 왕과 지배층은 금성의 주기로 전쟁 개시 시점이나 평화 조약과 관련된 일정을 잡았다.
엘 카라콜 천문대는 천장이 돔 형태이다. 육안으로 천체를 관측했던 마야인들에게 돔의 형태는 방위 맞춤 등의 기능도 했지만, 하늘의 원운동을 상징하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 그런데 이 모양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우리의 기억 속 자리 잡은 천문대의 외관도 이런 돔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5m 구경의 헤일망원경이 설치된 미국 팔로마산 천문대를 생각해 보라. 오늘날 천문대의 돔 천장은 다양한 기능이 있다. 망원경을 보호하고, 천장이 회전하면서 원하는 하늘만 노출시킬 수 있으며, 바람이나 빛, 날씨 등의 외부 기상현상의 영향을 최소화해준다.
팔로마산 천문대
연구원 본원 주변에도 별을 관측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대전시민천문대다. 관측실에서 천체망원경으로 태양의 홍염과 흑점, 행성과 항성, 성운, 성단 등을 관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저녁 8시에는 별 음악회와 시 낭송회가 진행된다. 무료로 제공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라 매년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대전시민천문대를 찾고 있다. 날씨를 잘 살펴 어둑해진 밤,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해 보는 것은 어떨까. 거대한 하늘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보고 있으면 마야인들이 천체를 신성시했던 그 마음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