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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대화되는 공간감을 느끼다

원근법

가끔 SNS에 ‘원근법 무시’라는 제목으로 올라오는 사진이 있다.
말 그대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작게 보이고, 멀리 있는 사람이 크게 보인다는 뜻이다.
이런 사진들은 보는 사람에게 웃음을 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쓸 수 있는 법칙이 바로 원근법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원근법이 15세기 유럽의 미술계에서는 센세이션을 일으킨 큰 ‘사건’이었다.

르네상스 미술의 시작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1490년, 젯소에 템페라, 880x700cm,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1점 투시법으로 그려진 <최후의 만찬>. 중앙으로 건물의 선들이 한 곳에 모인다.

원근법은 처음부터 회화의 기법으로 개발된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가 이집트와 그리스 건축 양식들에서 발견한 수학적·과학적 양식들을 기반으로 체계화시켜 원근법을 정립한 것이 시작이었다.

본격적인 원근법이 대두되기 이전부터 미술계는 ‘소실점’이라는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실점이란 그림 속 물체의 연장선을 그었을 때, 선들이 한곳에 모이는 점을 말한다. 브루넬레스키는 이 소실점의 개념과 건축 양식들의 실제적 관찰을 통해 원근법을 이론화하는 데 성공했다.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라는 원근법이 정립된 것이다.

원근법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데, 하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실점을 활용한 투시 원근법이고, 다른 하나는 색채의 농담을 통해 표현하는 색채 원근법이다. 투시 원근법은 소실점의 개수에 따라 1점 투시법, 2점 투시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근법의 발달은 르네상스 미술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평면적이었던 그림에 공간감을 만들어낸 중요한 진일보라고 할 수 있다.

평면에서 공간으로

원근법의 도입 이전까지의 그림은 평면적으로 그려져, 중요한 사람은 크게 그리고 덜 중요한 사람은 작게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조토의 그림을 보면 사람과 건물의 비율이 이상하다고 느껴진다. 그림 자체는 인물마다 손짓과 표정, 행동, 그리고 건물의 자세한 묘사까지 흠잡을 데가 없지만, 건물에 비해 사람이 지나치게 크다. 이는 원근법 없이 표현한 그림의 한계였다.

조토, <프란치스코에 대한 경의(Legend of St Francis 1. Homage of a Simple Man)>, 1300년, 프레스코, 270 x 230cm, 아시시 산 프란체스코 성당

원근법을 적용한 최초의 그림은 피렌체의 화가 마사초(Masaccio)의 <성 삼위일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뒤로 아치형 천장이 보이는데, 마치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마치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평면 위에 비로소 현실감이 살아 있는 그림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이후 원근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라파엘로 산치오의 <아테네 학당>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총출연하는 이 작품에는 그림 중앙으로 모이는 소실점부터 사람의 크기, 주변 사물과 실내 장식들의 크기까지 원근법을 교과서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마사초, <성 삼위일체(Holy Trinity)>, 1428년, 프레스코, 667x317cm,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그림에 현실감과 생동감을 더하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 1877년, 캔버스에 유채, 212.2x276.2cm,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원근법을 사용한 작품들은 이전에 비해 월등히 발전한다. 마인데르트 호베마의 <미델 하르니스의 가로수 길>은 평평하게 뻗은 지평선과 수직으로 길게 뻗은 가로수 길이 서로 만나 중앙에 소실점을 만드는데, 그 풍경이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한 실감 나는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여러 개의 소실점을 둔 원근법을 활용한 그림들도 살펴볼 수 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은 소실점이 두 개인 대표적인 그림이다. 우산을 들고 가는 사람들 뒤로 건물이 마치 삼각형 모양으로 작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네, <포플러 나무가 있는 풀밭>, 1875년, 캔버스에 유채, 54.5x65.5cm, 보스턴 미술관

색채 원근법을 활용한 그림들도 발표되었다. 색채 원근법은 대상의 명암과 색채의 강약을 통해 표현한다. 배경이 멀어질수록 흐려지고, 명암의 대비가 약해지며, 채도가 탁해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모네의 <포플러 나무가 있는 풀밭>에서 색채 원근법을 살펴볼 수 있다. 근경에 있는 꽃들과 포플러 나무는 선명하고 강한 색채의 대비로 표현됐다. 그러나 원경으로 갈수록 대상들은 흐릿해지며 하늘과 비슷한 색상으로 마무리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5세기 미술계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원근법.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대표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평면의 그림에 입체감을 더해주는 그림 속 원근법을 마음껏 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