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87 November 2021
지난 9월 1일,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발표한
‘인공지능 대중화를 위한 대국민 인공지능 이용 인식조사’에서 인공지능 대중화가 먼저 이뤄져야 할 분야를
묻는 질문에 병원·의료·헬스케어 분야라고 답한 비율이 62.1%로 전체 18개 분야 중 1위를 차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진찰의 필요성과 함께 의료 데이터를 학습해 환자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의료지능(의료+인공지능) 기술이 떠오르고 있다.
2020년 인텔이 미국의 헬스케어 분야 CEO나 연구자, 투자자 등 리더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84%의 응답자가 임상 작업에 이미 의료지능을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2018년에 같은 질문의 응답 결과였던 37%에서 두 배 이상 오른 수치다.
의료지능에 대한 신뢰성에도 큰 변화가 감지됐다. 글로벌 조사기관 다이네이터가 한국, 싱가포르, 호주 등의 영상의학과 의료진 1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0%가 의료지능이 현장에 도입될 경우 더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의료지능을 활용한 의료시스템은 여러 범위에 걸쳐 확대되고 있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치료법을 제시하는 것뿐 아니라 의료산업, 의료 시설, 의료 서비스 등 의료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인공지능과 의료 서비스일까? 앞서 언급했던 조사처럼, 의료지능 서비스는 의료진에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환자의 증상이나 질병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사회의 기초가 되는 의료 서비스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의료 분야에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IBM이 개발한 ‘왓슨(Watson)’이다. 왓슨은 클라우드 기반 인공지능 플랫폼으로, 환자의 증상을 입력하면 과거 수십 년간 확보된 임상 사례는 물론 수십만 페이지에 달하는 전문 자료를 검색,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제시한다.
이렇게 높은 수준의 의료지능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각 병원의 환자 진단기록인 전자의무기록(EMR)을 통합하고 의료 데이터를 수집·축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의료법·제도상 한계가 있다. 의료 데이터에 포함된 개인의 민감한 정보들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ETRI는 EMR을 통합하는 대신, 각 병원의 EMR 기반 의료 인공지능을 동시에 활용하는 ‘앙상블 의료지능’ ▲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는 빈도와 검진 항목 등의 분석 중요도를 서로 다르게 설계해 더욱 정밀한 예측이 가능한 ‘시계열 EMR 의료지능’ ▲ EMR 데이터뿐 아니라 심장 CT 영상 데이터를 함께 학습하고 활용해 심혈관질환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환자 맞춤형 치료에 도움을 주는 ‘멀티모달 의료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인공지능 주치의 ‘닥터 AI’를 개발했다.
ETRI는 병원마다 의료지능을 구축해 사람이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례를 딥러닝으로 학습시켜 닥터 AI의 정확도를 높일 예정이다. 이렇게 닥터 AI의 성능을 발전시키고 다양한 곳에 적용할 수 있다면 지역별로 편차가 심한 의료 수준을 상향 평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지역 검진센터에서 호흡계 만성질환을 진단할 때 닥터 AI를 통해 심혈관계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된 대형병원 의료지능을 활용하면 더 종합적이고 상세한 분석·예측이 가능하다.
특히 EMR을 통합하는 방법 대신 각 병원이 가지고 있는 EMR 기반 의료지능을 동시에 활용하는 앙상블 의료지능은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에 직접 접근하지 않고 다른 기관의 EMR을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관별 EMR을 빅데이터화한 셈이다.
ETRI는 현재 심혈관질환을 타겟으로 개발된 닥터 AI를 암이나 당뇨병 등 다양한 질병에 적용하고, 진단뿐 아니라 치료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AI를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Google이나 IBM 등 세계적인 기업들은 헬스케어 분야에 가장 먼저 인공지능을 도입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글로벌 인공지능 헬스케어 시장이 2018년부터 연평균 50%씩 성장해 2025년에는 약 43조 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Google의 모기업인 Alphabet은 ‘Verily’라는 이름의 자회사를 통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헬스케어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질병의 원인을 밝히고 맞춤형 치료를 실현하기 위해 유전자, 생활습관, 질병에 관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스스로 수집, 분석한다. Apple 또한 환자, 가족, 간병인, 의사, 간호사가 치료계획을 공유하고 복약 상황 등을 모니터링해 환자의 치료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소프트웨어 ‘Care Kit’을 개발하는 등 전 세계의 관심이 의료지능을 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진들의 의료 지능 기술도 경쟁력을 더해 의료 서비스를 확대시키고, 나아가 세계 의료 서비스 시장에서 인정받는 기술이 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