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80 July 2021
지난 2016년 AR을 바탕으로 한 모바일게임 ‘포켓몬 고’가 전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후,
AR(Augmented Reality), VR(Virtual Reality) 등 실감형 콘텐츠에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음료를 즐기면서 실감형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유명 크리에이터나 연예인들이 체험하면서 대중들의 관심과 열기는 더욱 높아졌다.
실감형 콘텐츠는 별도 디스플레이를 거쳐 콘텐츠를 접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콘텐츠 안에 자리하거나 콘텐츠가 현실의 일부로 스며드는 방식으로 훨씬 높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덕분에 일찍이 2010년대 초반에 미래산업으로 주목받았지만, 성장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용자들이 찾을 콘텐츠, 이를 유통할 플랫폼, 기반이 되는 네트워크, 접근가능한 디바이스가 균형을 이루며 유기적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성장하기 어려운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것이 콘텐츠 부족이다. 국가별·플랫폼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노트북 등 기존 IT 기기로 즐길 수 있는 2D 콘텐츠는 수없이 많이 나오는 반면, 3D 등 실감형 콘텐츠를 즐길 기기는 물론, 콘텐츠 자체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적은 콘텐츠와 높은 진입장벽이 벽을 치고 있는 것이다.
실감형 콘텐츠가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큰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수요가 적은 점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아직 실감형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배우고 제작할 수 있는 기존 콘텐츠와는 달리, 실감형 콘텐츠는 전문적인 기술이 없다면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어려운 점이 많다. 기술적인 면에서 숙련이 되더라도 관련 장비를 구하거나 콘텐츠를 유통, 보급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부는 지난 2020년 ‘가상·증강현실 규제혁신 로드맵’을 내놓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가상융합경제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VR·AR·MR(Mixed Reality)을 아우르는 가상융합기술(XR, Extended Reality)을 집중 육성해 2025년에는 30조원 규모의 XR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 콘텐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VR, AR 등의 실감형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 실감형 콘텐츠 개발 기업 ‘스페이셜’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5월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실감형 콘텐츠를 활용한 솔루션 사용량이 1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외에도 EU, 중국 등의 주요 국가는 실감형 콘텐츠 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으며, 페이스북과 유튜브 같은 글로벌 기업도 실감형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기기, 콘텐츠, 네트워크, 플랫폼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실감형 콘텐츠 관련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현재 사용되는 기술들은 해상도가 낮거나 완전한 입체감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사용자가 어지러움이나 멀미를 호소하는 등 콘텐츠를 즐기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ETRI는 이런 어려움을 줄이면서도 사람의 눈처럼 자연스럽게 고해상도 입체 영상을 얻는 기술을 개발했다. 바로 비전문가도 3D 영상을 만들고 편집까지 할 수 있는‘비정형 플렌옵틱(Plenoptic)’콘텐츠 획득, 생성, 저작 및 가시화 플랫폼 SW 기술이다.
플렌옵틱 기술은 빛 정보를 고차원으로 획득해 다양한 입체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전용 플렌옵틱 카메라로 촬영한 뒤, 고성능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ETRI가 개발한 기술은 이미 촬영한 영상과 사진도 초점과 시점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판소리 공연에 본 기술을 활용하면 영상을 편집할 때는 북을 치는 고수와 소리꾼 쪽 등 원하는 곳으로 초점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시점도 기본 화면에서는 촬영 장비나 마이크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등장인물을 비추도록 바꿀 수도 있다.
위치와 이동성 제약 없이 자유롭게 촬영이 가능한 ‘비정형 플렌옵틱’ 기술은 동일 용량 대비 품질도 정형 플렌옵틱 기술보다 품질이 높다. 영상 해상도도 FHD에서 4K까지 높였으며, 비전문가도 영상을 손쉽게 편집할 수 있다. 특히, VR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 AR 글래스, 무안경 입체 영상 등 원하는 형태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덕분에 창작자들의 자유도를 높여 부족했던 실감형 콘텐츠 생산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본 기술은 카메라, 디스플레이 제조 회사뿐 아니라 CG/VFX, 콘텐츠 창작 및 편집회사, 이미지/영상 툴 SW 및 앱 개발사, 내시경 등 의료장비, 반도체 등 공정 감사 장비, 홍채인식 및 CCTV 등 보안회사, 천문,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ETRI는 본 기술을 활용해 2020년 아시아문화전당에서 봉산탈춤, 판소리 등 무형 문화재를 촬영하고, 2021년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에서 택견 무술 시범을 촬영하기도 했다.
ETRI가 개발한 기술이 디지털 콘텐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우리나라 문화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