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74 april 2021
인류의 탄생과 함께 발명된 물건 중 하나가 바로 옷이다.
석기시대에는 동물을 잡아 그 가죽으로 몸을 덮었고, 계급이 생겨나면서 옷으로 신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산업혁명으로 기성복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2차, 3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의류의 역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1950년, 컴퓨터를 처음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앨런 튜링은 생각하는 기계의 구현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 담긴 논문을 발표했다. 6년이 지난 1956년에는 존 매카시 교수가 다트머스 회의를 개최하면서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인공지능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201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인공지능 기반의 챗봇은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구글에서는 화가 반 고흐의 화풍을 학습한 인공지능 ‘딥드림’을 공개해 총 29점의 그림이 9만 7천 달러에 판매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2016년, 바둑기사 이세돌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AlphaGo)의 대결이 성사되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은 이미지에서 언어를 인식해 번역해주기도 하고, 소비자가 평소 어떤 콘텐츠를 어떻게, 얼마나 소비하는지 인식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당장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휴대전화에도 사용자의 음성을 인식해 원하는 기능을 작동시켜주는 인공지능 비서가 설치되어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녹아들어 있다.
이제 인공지능은 모방을 넘어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겨지던 창작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단순히 주어진 데이터를 가지고 그 안에서 최적의 결과물을 내놓던 과거와는 달리, 학습한 데이터를 가지고 이 전에는 없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창작물은 아직 한계가 있다. 분야에 따라 기술의 수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사람이 보았을 때 어색한 부분이 있거나 퀄리티가 낮아 실제 생활에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창작의 영역에서 어디까지 쓰일 수 있는지 그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ETRI 연구진은 실제 의류 시장에서 활용 가능한 수준의 인공지능 의상 디자인 기술을 개발했다. ETRI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패션상품 마켓 플랫폼 기술은 사용자의 취향과 최신 트렌드,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 수만 장에 이르는 디자인을 새롭게 생성해낼 수 있다.
본 기술을 활용하면 소상공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패션이나 액세서리 등의 상품을 기획부터 제작까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또한, 직접 촬영한 사진에 AI가 특정한 패턴이나 스타일 등을 더해 로고나 아이콘 등을 창조할 수도 있다. 연구진은 이를 활용해 실제 액자, 머그, 쿠션 등의 상품을 만들어 완성도 높은 상품을 제작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덕분에 다양한 제품이 경쟁력을 갖추게 되고 소비자들의 구매 의사결정에도 큰 도움을 제공할 전망이다.
연구진은 본 기술이 의도에 맞게 옷을 착용한 모델 및 영상을 만들어내는 기술로 단순히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을 활용해 옷을 덧씌우는 방식과는 기술적 차별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연구를 수행하면서 홈트레이닝, 골프 스윙 자세 분석 등 사람의 자세를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한 경험이 모델의 자세를 고려한 착장 영상 자동 생성 기술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1)을 이용해 구현된 이번 기술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Metaverse)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을 뜻하는 Meta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의 합성어로, 실제 세계와 같이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을 하는 3차원 가상 세계를 의미하는데, 이번 기술은 이런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도 인공지능이 제작한 의상을 적용해 아바타에 입힐 수 있는 것이다.
ETRI가 개발한 기술은 시장 분석과 새로운 디자인, 실제 옷 착장 영상까지 의류 제작에 필요한 모든 과정에서뿐 아니라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가상현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연구진은 앞으로 K-패션에 특화된 600만 장 이상의 대규모 패션 전문 데이터셋을 구축, 더 한국적인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을 선보일 계획이다. 앞으로 나만의 의상을 디자인하고 소상공인에게 경쟁력을 더해줄 인공지능 디자이너의 발전을 지켜보자.
1)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복수의 생성 신경망과 구별 신경망이 서로 경쟁하며 생성되는 결과물의 질을 높이는 방식의 인공지능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