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우리는 나라를 되찾고 그를 잃었다.
밤이라 불리던 시대. 그는 목숨을 던져서라도 찾고 싶은 빛이 있었다.
나라 잃은 슬픔을 국권 회복에 대한 의지로 승화시킨
그를 비롯한 우리 민족은 심장에 6글자를 품었었다.
“대한 독립 만세”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자신 있게 대답 할 수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서거 70주년이다.
2013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무총리상, 2014년 서울특별시 건축상 대상을 받고,
건축전문가 100명이 뽑은 한국의 현대건축 베스트 18위에도 선정된 바 있는
윤동주문학관에서 그의 숨결과 정신을 느끼고 왔다.
별을 노래한 민족시인, 별이 되다
윤동주 시인이 이십 대 청춘을 보낸 1930~40년대는 일제 강점기 중에서도 일제의 폭압이 절정에 치달았던, 민족역사상 가장 암흑기였다.
당시 연희전문학교에 다녔던 문학청년 윤동주는 후배 정병욱과 함께 종로구 누상동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을 했고,
그곳에서 그의 주옥같은 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인연과 연유로 인왕산 자락에 윤동주문학관은 자리하게 됐다.
북악산과 인왕산 자락 사이, 성곽을 오르는 길 초입에 들어서자 소담한 하얀 건물이 보였다.
문학관은 물 펌프 역할을 하다가 버려진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들어졌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문학관 전체 주제인 ‘우물’인데
윤동주 시인이 자화상의 매개체이자 성찰의 도구로 여긴 우물에 상징성을 부여해 기획한 것.
제1전시실 ‘시인채’에는 시인의 생애가 반듯하게 정리돼있었다.
망국의 한과 독립의 염원이 응축된 짧고 굵은 스물여덟 삶의 연대기를 읽어나갈수록 가슴이 뜨거워졌다.
전시장 한 쪽 벽에는 시인이 고이 간직하여 즐겨 읽던 책들의 영인본과 친필 원고들이 가지런히 걸려있었다.
시인이 가장 존경했던 선배 정지용 시인과 닮고 싶던 시인 백석의 책도 보였다.
제2전시실 ‘열린 우물’은 물탱크의 천정을 제거하고 만든 공간이었다.
전시실 돌다리에서 올려다본 네모난 하늘 위로 구름 한 점이 흘러갔다.
네 면의 벽에 새겨진 물 떼 자국과 녹슨 흔적들이 조국의 광복을 노래했던 식민지 문학청년의 애타는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통로를 따라 제3전시실 ‘닫힌 우물’로 이동 했는데, 폐기된 가압장의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만든 곳으로
시인이 생을 마감했던 감옥을 재현한 공간이기도 했다.
서늘한 벽 위에 순수하고 치열했던 시인의 삶에 관한 영상물이 상영됐다.
일본 유학 중 우리말로 글을 쓴 시인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
독방에 감금된 그는 하루 종일 고된 노역을 하고, 생체 실험 대상이 돼 성분불명의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1945년 2월 16일 스물 여덟의 나이로 운명했다.
일본의 형무소들 중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시인이 별이 된지 불과 6개월 후, 우리나라는 그토록 바라던 해방을 맞이했다.
이 언덕에 오르면,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영상의 여운을 안고, 문학관을 나와 왼쪽으로 나있는 산책로에 올랐다.
시인이 새벽과 저녁마다 이곳을 오르내리며 시상을 떠올렸다고 했다.
세월을 타지 않는 불멸의 시들이 탄생한 발상지인 ‘시인의 언덕’. 언덕 중턱부터 시인의 시가 적힌 울타리들이 쳐져있었다.
일본 유학 조건과 조선총독부의 압력에 못 이겨 창씨개명을 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극심한 고통과 고뇌를 담아 ‘참회록’과 대표작 ‘서시’ 등을 읊조리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언덕 꼭대기에 올라 성곽에 등을 기대어 차오른 숨을 고르고, 산 아래 풍경을 감상했다.
저 멀리 경복궁과 광화문이 두 눈에 담겼다.
모자에 진 작은 주름 하나도 견디지 못하던 사람, 영혼의 구김도 참을 수 없었던 사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사람.
그래서 자신의 인생마저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랐던 섬세한 완벽주의자 윤동주 시인.
문학청년은 고인이 되고 난 뒤에야 정식 시인이 됐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그의 첫 시집이 바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언덕 위에 서서 동지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청년 시인 윤동주를 생각했다.
밤이 되면 정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함께 만드는 언덕이 될 것 같은 곳이었다.
문학을 읽으며, 별을 헤다
언덕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와, 윤동주문학관에서 10분 남짓한 곳에 위치한 ‘청운문학도서관’으로 향했다.
종로구 16번째 도서관이자 문학 전문 도서관인 이곳은 ‘최초의 한옥 공공도서관’으로 개관과 동시에 명소가 됐다.
인왕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지리적 여건을 고려하여 우리의 전통 문화 양식인 한옥으로 지어졌다고 했다.
지붕에 올린 기와는 숭례문 지붕기와처럼 가마에서 직접 구운 전통방식으로,
낮은 담장기와는 돈의문 뉴타운 지역에서 철거된 한옥기와 300여 장을 재활용해 만들어졌다.
도서관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1층 별채와 사랑채부터 둘러봤는데
문학 창작교실과 문화예술교육 같은 인문학 수업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문인, 학자, 시민 주체들의 소통 공간이었다.
마침 여름 방학을 맞아 까치 서당 어린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고,
한복을 곱게 입은 개구쟁이 학생들이 훈장님과 즐겁게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한층 내려와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열람실로 들어갔다.
이달의 도서관 캠페인 ‘마음에 시한편’ 항아리가 책장들 앞에 놓여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시, 소설, 수필을 중심으로 구비된 도서들 중 윤동주 시인의 시집 '달을 쏘다'를 읽다가
인왕산을 등지고 빌딩숲 사이로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부암동 산자락을 내려왔다.
갈수록 힘겨워지는 세상살이에 지쳐서, 꼬리를 물고 터지는 사건사고들에 실망해 나라를 원망하고, 나라에 분노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요즘.
버려진 청운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윤동주문학관과 그 일대 산책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하고 새롭게 정비해 다시 물이 힘차게 흐르도록 하는 가압장처럼 시들해진 애국심이 되살아나도록 했기 때문이다.
광복절이 있는 8월,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우리들에게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어떤 의미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