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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ol.30 2015.01.09
스페이스
온 세상이 하얗게 하얗게

눈꽃 산행의 성지 대둔산.
우리가 다른 계절보다 조금 더 수고스러운 겨울 산행을 고집하는 건,
포근히 눈 덮인 산마루를 보며 새하얀 도화지를 받아든 설렘에 취할 수 있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찬란한 은빛 풍광에 감동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눈꽃이 만개하여 겨울의 절정을 뽐내고 있는 대둔산으로 떠나보자.

원효대사도 반한 '호남의 금강산'

원효대사가 3일을 둘러보고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대둔산(大芚山, 878m)은 전북 완주군과 충남 논산시, 금산군에 걸쳐 있다.
1977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빼어난 암릉미를 자랑하여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이 산은 야누스처럼 남쪽인 전북으로는 기암절벽이, 북쪽인 충남으로는 완만한 계곡과 울창한 숲이
서로 상반된 산세로 매력적이지만, 그 탓에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대둔산 초입인 전북 완주와 충남 금산을 가르는 고개 ‘배티재’는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군사 1500명으로 2만의 왜군을 격파한 유서깊은 곳이다.
또한 이곳은 1895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일본군과 3개월에 걸쳐 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최후의 항전지이기도하다.

사연 없는 인생이 없는 것처럼 오랜 세월을 지나온 대둔산도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지만,
눈 덮인 겨울 대둔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순백의 수려함 그 자체다.

눈꽃이 수놓은 한 폭의 산수화

대둔산의 3대 명물 ‘금강구름다리-삼선계단-마천대’ 코스로 산행을 시작하기 위해
도립공원 입구에 들어서서 7부 능선에 위치한 케이블카 정류소로 향한다.
1990년 11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대둔산의 빨간 케이블카는 정원 50명을 태우고 해발 600m 지점까지 올라간다.
창 밖 너머 왼쪽에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모양의 '동심바위'는
그 모습이 신기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5분 정도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금강 통문을 가로질러 구름다리가 나타난다.
길이 45m, 폭 1.05m, 지상까지 높이 47m인 구름다리는 튼튼하게 설치됐지만,
막상 건너보면 심장이 콩알만 해질 만큼 제법 높고 아찔하다.

금강구름다리를 지나 1시간 정도 오르면 삼선바위와 삼선계단에 당도한다.
삼선바위는 고려 말 한 재상이 나라가 망함을 한탄하여 딸 셋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평생을 보냈는데
그 딸들이 선녀로 변해 바위가 되었고, 그 모습이 마치 선녀들이 능선 아래를 지켜보는 것과 흡사하다 하여 이름을 삼선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편, 삼선바위 옆에는 길이 36m, 경사 51°, 127계단으로 이루어진 삼선계단이 있는데
사다리처럼 가파르고 계단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라 걸음마 떼는 아기처럼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오르게 된다.
막상 계단 끝까지 올라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다보면 눈부신 겨울왕국이 펼쳐지는데
방금 전까지 계단을 오르며 느꼈던 공포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게 된다.

삼선계단을 지나 약 40분 정도를 더 오르면 대둔산의 정상인 마천대를 만나게 된다.
‘하늘을 어루만질 만큼 높다'는 뜻을 가진 마천대는 말 그대로 넋을 놓고 빠져 들게 되는 대둔산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햇살을 받아 수정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봉우리들이 겹겹이 파노라마를 펼치고,
수백 년 된 토종 소나무 가지 가지마다 상고대가 활짝 펴 비경을 연출한다.
그 속에 있으면 어느덧 정결한 산의 기운에 사사로운 감정과 생각들이 수그러들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잠시 후, 하얀 산봉우리에 구름이 걸리고, 하늘과 산의 경계가 사라져 신비로운 분위기가 산 전체에 감돈다.
자연만이 연출해 낼 수 있는 장엄하고 눈부신 풍광으로 사람의 영혼까지 사로잡는 대자연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 그 위대함에 압도되어 한없이 겸손해진다.

이색체험 ‘짚핑(Ziping)’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한 레포츠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각광받고 있는 대둔산 짚핑.
안전 최우선 프로그램이라는 목표와 함께 대둔산 천혜의 지형지물을 이용한 6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1코스 번지코스, 2코스 피톤치드, 3코스 투어코스, 4코스 전망대, 5코스 차마고도 적응코스, 6코스 차마고도 코스 중
탑승자가 코스를 선택하여 다양한 비행을 즐길 수 있다.
그 중, 마지막 6번 차마고도 코스는 세계 최장의 길이(1,377m), 최고의 스피드 120km/h를 넘나드는 속도와
지상으로부터 150m 이상의 아찔함은 대둔산 짚핑에서만 즐길 수 있는 스릴감과 해방감을 제공한다.
또 한 가지 대둔산 짚핑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은 대둔산을 한 눈에 담으며 비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 노동이 심한 직장인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회사 연수차 많이 오고, 청소년들은 담력과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보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짜릿한 경험이 될 것이다.

겨울 산행의 정수인 눈꽃에 꽃말을 붙여보면 ‘치유와 환희’가 아닐까 싶다.
새하얀 융단 위에 한 발자국씩 새길 때마다 내면의 먼지를 털어내고, 독소를 비워 낸다.
살면서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소홀히 넘겼던 생채기들이 이제야 비로소 치유되는 듯하다.
대둔산이 안겨준 가슴 벅찬 환희의 순간을 선물로 받고 내려오는 하산길은 몸은 피곤해도 마음만은 더없이 따뜻하고 든든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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