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반기는 고향집의 정취
‘뒤웅박’ 이름이 정겹기도 하다. 그 뜻인 즉, 쪼개지 않고 꼭지 근처에 주먹만 한 구멍을 뚫고 속을 파내어 만든 바가지를 말한다. 옛 사람들은 처마 밑이나 방문 밖에 뒤웅박을 매달아두고 밥을 담아놓기도 하고 씨앗을 갈무리하거나 달걀 따위를 보관하기도 했단다. 특히 씨앗을 간수하는 것은 이듬해의 풍농을 위한 일이었기에 뒤웅박은 매우 중요한 의미였다.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씨앗을 소중히 보관하던 뒤웅박처럼 미래의 건강한 식문화를 가꾸는 알찬 씨앗을 담겠다는 뜻이 이름에 담겨있다.
이곳에 뒤웅박고을이 문을 연 것은 2009년 가을. 일평생 전통 장을 담아온 어머니의 뜻을 기리기 위해 손동욱 회장이 세운 이곳은 조성계획을 세운 지 10년 만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나무 한 그루, 조형물 하나에도 세심한 정성이 엿보인다.
뒤웅박고을에 들어서자 아담한 정원이 손님을 맞았다. 이곳에도 ‘뒤웅박’만큼이나 정겨운 이름이 있는데 ‘해담뜰’이라 한다. ‘맑은 햇살과 청정 바람이 스미는 뒤뜰’이라는 이름풀이마저 곱다. 가운데 넝쿨길이 뻗어있고 왼편에는 십이지신 조각들이, 오른편에는 시비들이 서있다. 박목월의 ‘나그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노천명의 ‘사슴’ 같은 명시들을 새긴 비석들이다. 특히 정호승의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를 비롯해 어머니를 주제로 한 시들이 눈에 띈다. 눈이 소복이 쌓인 비석들과 소나무들이 한겨울의 운치를 더해준다.
시비와 동상, 장독에 담긴 효심과 정성
뒤웅박고을을 거닐다 보면 곳곳마다 어머니를 향한 애절한 그리움과 효심이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다. 먼저 해담뜰을 가로지르는 넝쿨길을 지나니 뒤웅박고을 설립자의 어머니 동상이 인자한 얼굴로 손님을 맞는다. 어머니 동상은 곱게 한복을 갖춰 입고 서서 한 손으로 장독을 매만지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손 회장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그 모습을 곁에 두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동상 곁에는 ‘어머니...’로 시작하는 제목 없는 시가 바위에 새겨있다. ‘어머니. 손에 물마를 날 없이 일해도 당연히 당신의 몸이라 여기시며 싫은 내색 한 번 못하셨다는 말. 그 때는 몰랐습니다. 철부지 자식에게 마음 상해도 끝없는 이해와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주셨다는 걸 그 때는 몰랐습니다. (중략)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 가슴 속 눈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입니다.’ 구절마다 어머니를 향한 손 회장의 그리움과 효심이 절절하게 전해지는 글귀에 코끝이 찡하다.
동상의 다른 한 편에는 1986년 작고한 어머니가 썼던 장독들이 조붓이 모여 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장을 담았던 어머니에게 장독은 자식과도 같았으며 삶 그 자체였다. 아들은 된장 한 수저에도 신성함을 가득 담았던 어머니의 정성된 모습을 이곳에 모시고 싶었다고 한다.
어머니 동상 맞은편에는 전국 각지의 장독들을 전시해 놓은 팔도장독대가 자리해 있고, 테마 별로 조성된 박물관들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 전통장류박물관에도 어머니의 정성과 아들의 효심이 묻어있다. 특히 1960년대에 손 회장의 어머니가 직접 담은 ‘씨 간장’이 진열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전통 장 문화를 알리는 특별한 공간이외에도 볼거리, 체험거리가 많다. 테마 별로 조성되어 있는 박물관에는 전통 장 및 발효음식과 관련한 유물 88점을 포함해 130여 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처럼 뒤웅박고을은 전통 장 문화를 알리는 박물관, 체험학습장이면서 무엇보다 장에 담긴 어머니에 사랑과 정성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옛날 우리의 어머니들이 평생을 어루만지던 장독은 단순히 장을 보관하던 항아리가 아니었다. 정한수를 올려놓고 가족들의 건강을 빌던 깊은 사랑과 정성을 담은 곳이었다.
뒤웅박고을은 우리민족이 이어온 장문화와 정성스럽게 여겼던 장독을 통해 효문화를 잃어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어머니에 대한 정서를 심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