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있는 선박
육상에서 수리한다
2000년대 후반, 한국은 선박 건조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렸다. 하지만 동시에 무서운 추격자인 중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와 조선업체는 2000년도 중반부터 중국이 추격해오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IT 산업도 새로운 난관에 봉착한다. 타 산업과의 접목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인간과 함께하는 TI 기술로서의 성장이 요구된 것.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조선 산업과 IT 산업이 접목, ‘IT+조선’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개척되기 시작한다.
01
스마트한
선박기술
선박의 안전 및 방재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설계부터 제작시공, 유지보수까지 보다 철저한 관리와 운항시스템의 최적화다. 특히 기존 해운산업의 관행에 대해 ICT의 관점에서도 문제점을 개선해나갈 필요성이 컸다. 지난 2011년 개발된 ‘SAN(선박네트워크)기반 원격 선박 유지보수 기술’이 주목 받은 이유다.
ETRI와 현대중공업이 공동 개발한 본 기술은 해상에서 운항 중인 선박과 선박 장치의 상태를 육상에서 원격으로 감시하고, 고장 유무를 판단하며, 문제 발생 시 이를 육상에서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 있는 원격 선박장치 유지보수 기술이다. 즉, 통합된 한 화면을 통해 엔진, 각종 센서, 조타 등 항해중인 선박의 상태를 선내·외에서 모니터링하고, 필요 시 원격으로 유지·보수할 수 있는 기술이다.
과거에는 선박에서 장치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장치 제조업체의 유지보수 요원이 선박에 직접 승선하여 문제원인을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는 형태로 유지보수가 진행돼왔다. 그러나 한반도 해역은 물론 5대양을 운항 중인 선박에 항상 최고의 전문가가 승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02
첨단 IT기술이 집약된
'스마트 선박'
‘SAN기반 원격 선박 유지보수 기술‘은 크게 원격 유지보수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술, 웹기반 선박 유지보수 인터페이스 기술, 선박장치 통합 게이트웨이 하드웨어 기술, 선내외 통신 기술 등 네 가지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기술은 원격유지보수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술이다. 선박 장치의 정보를 수집하고 육상에서 그 정보를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미들웨어 기술이다. 기존의 선박에서는 선박장치의 상태를 장치의 바로 앞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선박 내에는 무려 460여 개의 장치들이 8개의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업자는 각 그룹별 모니터를 통해 각각의 상황을 모니터링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예를 들어, 선박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의 경우, 엔진 바로 옆에 있는 엔진 룸에서만 엔진의 모든 상태를 감시하고 제어할 수 있었다.
웹기반 선박 유지보수 인터페이스 기술은 육상에서 선박정보를 보는 방식을 웹기반으로 제공해주는 기술이다. 선박의 유지보수 요원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보고 싶은 선박의 정보를 주변의 PC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선박에 있는 장치들을 연결하는 일종의 응용 라우터 장치인 선박장치 통합 게이트웨이 하드웨어 기술, 선박 장치와 장치간의 통신 및 선박의 ISIG(Intra-Ship Integrated Gateway)와 육상의 서버 시스템간의 통신의 신뢰성을 제고해주는 선내외통신기술도 구축했다.
본 연구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상용화다. 본 기술은 현대중공업의 대표적인 조선IT기자재인 AMS(Alarm Monitoring System)에 적용됐으며,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덴마크 AP Moller의 선박 40여 척에 탑재되는 등 총 120여 척의 상용 선박에 탑재되는 성과를 창출했다. 세계 우위를 점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 산업, 조선과 IT를 결합시킨 ‘SAN기반 원격 선박 유지보수 기술‘을 통해, 선박의 경제적인 운행과 효율적인 관리가 실현되고, 철저한 유지·보수를 통한 안전성이 확보되기를 바라본다.
03
연구개발 히스토리
기술을 개발한 후부터가 문제였다. 선박 제조 업체에 본 기술을 설명하고, 기술을 선박에 탑재하라고 설득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 당시 ETRI의 존재를 모른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개발팀은 선박 제조 업체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들을 설득하는 데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은 ETRI와 선박 업체가 함께 참여했던 워크샵이었다. 워크샵을 통해 두 업체는 끊임 없는 대화를 이어 갔고, 그리고 의기투합한 결과 본 기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 또 IT 업체와 선박 업체에서 사용하는 기술 용어가 달라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같은 장비이지만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그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기울였다. 그렇게 의기투합해 개발한 기술이 스마트 선박기술이며, 선박기술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