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강국으로 가는
초석을 놓다
메모리 반도체 32K ROM 개발
반도체는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전자 및 통신기기의 핵심 부품이다. 저항이 매우 작아 전기나 열을 잘 전달하는 '도체'와 저항이 커 전기나 열이 흐르지 않는 '부도체'의 중간 정도에 있는 물질이다.
즉, 반도체는 이름처럼 평소에는 '부도체'처럼 전기가 거의 통하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다가 어떠한 인공적인 조작을 가하면 '도체'처럼 전기가 흐르는 물체를 말한다.
전기의 흐름을 조절하고, 더 나아가 전류량까지 조절 가능한 반도체의 발견은 전자 산업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특별히 대한민국 전자 산업의 발전사는 반도체의 발전사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반도체 기술의 개발과 발전은 우리나라 전자 산업은 물론 우리 일상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01
도시를 축소시킨 것과 같은
정밀한 반도체 기술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이다. 전자 산업 육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정부는 미래를 이끌 핵심 기술로 반도체를 주목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반도체를 진공관 대체 용도로만 사용했지만, 세계는 ‘컴퓨터’라는 거대한 시류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것은 곧, DRAM과 ROM 등에 대한 수요 증가를 의미했다.
1976년 9월에 열린 경제장관간담회에서는 1981년까지 내·외자를 포함해 총 6억 달러를 투입해 57개 품목, 151개 공장을 신설하고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품목을 완전 국산화함으로써 산업 구조를 기술 집약적 체제로 전환한다는 전자 공업 육성 계획이 결의됐다. 특히, 투자 규모와 파급 효과가 큰 반도체와 컴퓨터 관련 9개 품목은 정부 주도로 개발하기로 하고, 1976년 12월 30일 ETRI의 전신인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가 공식 출범하게 된다.
출범 이후 구미에 자리 잡은 KIET는 생산시설을 갖춰놓고 각종 반도체의 설계와 제조공정 및 양산 기술의 국산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마침내 1982년 초, 미국 VTI에 기술료를 지불하고 ROM 설계 및 일부 공정기술을 도입한 KIET는 같은 해 10월, 국내 최초로 32k ROM 개발에 성공한다.
32k ROM은 반도체 기판에 약 4천여 개의 단어를 기억할 수 있는 소자를 집적한 집적회로 제품으로 마이크로컴퓨터, 전자게임, 산업용 로봇, 가전제품 등에 폭넓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3㎜×4㎜ 크기의 32k ROM에 들어 있는 회로와 소자의 길이는 당시 대전광역시의 모든 도로(회로)와 건물(소자)을 축소한 것과 맞먹을 정도로 정교함이 필요한 기술이었다.
02
반도체 개발의 진정한 성공,
생산 수율을 높여라!
하지만 그동안 32k ROM의 기술 개발을 담당한 KIET 연구진과 과학기술계의 신경은 여전히 곤두서 있었다.
만족할 만한 생산 수율이 나오기 전까지는 32k ROM 개발을 자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도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틀리지 않고 정밀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반도체를 만들어내느냐를 나타내는 ‘생산 수율’ 역시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반도체의 생산 수율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반도체 공정에 있었다.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높은 순도를 가지고 있는 웨이퍼 판 위에 사진 인화 기술과 같이 감광 물질을 바른다. 그리고 여기에 회로가 축소된 유리판을 얹어 자외선이나 빛을 쬐어 회로가 들어설 부분을 부식시킨다. 이 부식된 부분에 불순물을 주입해 회로를 만든다. 이러한 ‘식각’ 과정을 총 7번 거쳐서 입체회로를 만드는데, 한 번의 식각 과정당 총 10개의 공정을 거쳐야 했다. 문제는 이렇게 70개에 이르는 공정에서 아주 작은 실수가 발생하거나 먼지가 달라붙게 되면 전체를 못 쓰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생산하는 사람에 컨디션에 따라 수율이 달라지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높은 생산 수율을 얻는 것은 높은 정밀함이 요구됐다.
일본이 미국의 반도체 기술을 앞서갈 수 있던 이유는 바로 이 정밀성 때문이었다. KIET가 VTI로부터 최초 디자인과 일부 가공기술을 받아 32K ROM을 처음 생산했을 때만 하더라도 수율은 고작 8%에 불과했다. 반도체 개발의 진정한 성공과 발전을 위해서는 VTI의 기술을 도입을 뛰어넘어 우리만의 기술과 경험이 축적돼야만 했다.
03
세계 최고 반도체
생산국으로 가는 초석
당시 과학기술처 이정오 장관은 32k ROM의 개발 성공 소식을 접하자마자 아침저녁으로 그래프를 그려가며 생산 수율을 독려했다. 당시 반도체본부장이었던 우대식 박사를 비롯한 모든 연구진은 밤샘 연구를 통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가면서 수율을 조금씩 끌어올렸다. 시설도 종래 VTI에서 제안한 습식에서 건식으로 바꾸는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수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원인을 세척 과정에 있음을 발견하고 개선하게 된다.
마침내 우리나라는 개발 다음 해인 1983년 4월 11일, 세계에서 8번째로 32k ROM 수율을 국제 수준급인 평균 44%, 최고 60%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는 같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미국의 AMI를 웃도는 수준으로, 일본의 리코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개발 과정에서 KIET는 VTI에서 제시한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좀 더 개선된 KIET만의 새로운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생산설비에 다시 접목하는 등 기술적 진보를 이뤄냈다.
KIET는 32k ROM 개발에 안주하지 않고 곧바로 64k ROM 개발에 착수해 불과 한 달 만에 64k ROM 개발에 성공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32k ROM의 기술 개발과 생산을 통해 반도체 생산과 관련된 기초 기술을 완전하게 익힌 우리나라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세계 7위권의 반도체 생산기술국으로 부상하게 됐다. 이러한 기술력들은 이후 DRAM 개발 등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세계 최고의 반도체 생산국은 물론 국내 전자 산업의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되는 원동력이 됐다.
- 1982.
- 미국 VTI(사)에서 ROM 기술 도입
- 1982. 10.
- 국내 최초 32k ROM 개발 성공
- 1983. 04.
- 세계에서 8번째로 국제 수준인 평균 44%의 생산 수율 성공
- 1983. 05.
- 국내 최초 64k ROM 개발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