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정보통신을 향한 도약,
그 발판을 마련하다
최초의 국산 교환기 TDX
‘TDX’는 ‘Time Division Exchange’의 약자로 ‘시분할 전전자교환기’를 의미한다. 시분할 전전자교환기는 제어계와 통화로계를 디지털화한 디지털 전전자교환기이다. 공간분할교환기에 비해 경제적이고, 우수한 통화 품질을 자랑하기도 한다.
01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 기술
전화 회선은 백색전화와 청색전화로 나뉜다. 청색전화는 사용권을 양도할 수 없는 전화 회선으로 우체국에 신청한 이들을 대상으로 설치가 이루어졌다. 백색전화는 개인이 임의로 사용권을 매각할 수 있는 전화 회선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한 집에 전화기 한 대 있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전화를 신청하면 설치되기까지 2~3년은 족히 걸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다른 전화를 사들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시판되고 있는 백색전화를 구매하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상당했다. 그때의 가치로 환산했을 때, 일반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한 채 값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또한, 돈이 있어도 공간적인 문제 등 다양한 골칫거리가 따랐다. PC를 이용한 전자교환기가 생산, 보급되고 있던 국제적인 흐름에 비하면 우리의 통신기술은 상당부분 뒤쳐져 있던 게 사실이었다.
전화공급이 어려우니 외국의 전화교환기를 국내로 도입하자는 의견은 상당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ETRI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연구소는 ‘외국에서 어떻게 전자교환기를 설계해 들여올 것인가’에 대한, 다시 말해 수입하는 방법 그 자체를 고민해야 했다. 그 기술을 들여와 습득하고, 최신 전화망을 설치하는 책무를 가졌던 것이다.
그러다 1976년 2월, 경제장관간담회에서는 수입 과정에서 요구되는 ‘고비용, 전문성’의 문제 해소 방안으로 ‘자체개발, 저가보급’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ETRI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자교환기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96회선짜리 1차 시험기를 완성했는데, 이것이 우리 힘으로 개발된 최초 TDX 기술의 일부였다.
1980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좀 더 개량된 TDX 기능 개발을 추진해 200회선 용량의 2차 시험기 제작에 성공했다. 선진국의 교환기 개발과 견주었을 때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 성과는 전자교환기 구조에 대한 이해와 개발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따라서 ETRI는 30여 명의 전자교환기 개발 전문 인력을 양산하며 TDX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02
칠전팔기,
거듭되는 도전 끝에 탄생한 TDX
ETRI는 1981년부터 전화국 현장 시험을 위해 500회선 용량의 선행 시제품 개발을 목표로 3차 시험기 제작에 착수했다. 이듬해 초에 완성된 3차 시험기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구조를 채택하고, 기본적인 유지 보수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독립적인 작은 교환기 역할을 수행했다. 같은 해 7월, 본격적인 시험 운용에 들어가게 되면서 한국형 시분할 전전자교환기는 TDX라 불리기 시작되었다. 3차 시험기와 현장시험은 훗날 소프트웨어기본 구조와 타임스위치 방식, 운용 관리 기능 등에 있어 TDX-1 설계의 근간이 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TDX-1이 본격적으로 연구개발 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이들은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ETRI는 1982년부터 5년간 연인원 1,300명과 총 240억 원의 연구비 투입을 골자로 하는 개발 계획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당시 큰 공장 하나를 세우는 데 약 50억 원의 예산이 필요했던 것을 감안하면, 240억 원의 연구 개발비는 막대한 규모였다. 더구나 몇몇 선진국만이 갖고 있는 TDX를 당시 우리나라 기술 수준으로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국산품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았던 것이다.
그러나 ETRI는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두 번에 걸친 시험기 개발 과정의 이력을 가지고 있었고, 1981년부터 1982년 사이 3차 시험기를 개발해내면서 1983년, 인증 시험을 거치기에 이르렀다. 1984년에는 9600회선 용량의 TDX-1 실용시험 모델 개발에 성공해 실용 시험 시범 운영을 실시했고, 1차 및 2차에 걸친 인증 시험을 통해 상용시험기 시스템 규격서 작성까지 완료했다. 이후 1984년 4월 25일 시범 인증기를 개통하면서 1986년 3월 14일, 상용화에 성공했다.
03
어떤 시련에도
끄떡없는 발판
TDX-1은 Z-80이라는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만들어졌다. 이 프로세서는 8bit로 된 마이크로컴퓨터지만 성능이나 동작 면에 있어 매우 안정적이다. 이 프로세서가 시스템 내에 수백 개나 설치돼 각종 디바이스를 제어, 관리하고 프로세서 간 상호 통신을 통해 전체가 한 개의 컴퓨터처럼 동작한다. TDX는 저가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 절감이 가능하고, 분산 제어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연구원이 동시에 자기장치의 기능을 개발, 시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모든 이점들을 각각의 기능이 검증된 후에 시스템에 통합해 쉽게 시스템 시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성공의 큰 발판이었다.
TDX 개발은 TDX-1X, TDX-1, 그리고 후속모델인 TDX-1A, TDX-1B, TDX-10 등 대형 교환기를 탄생 시켰다. 이후 디지털 유선전화 TDX-ISDN 까지 다양한 발전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용량은 커지고 성능은 높아졌으며 장치는 새로워졌다. 이로써 국내에서도 세계무대에서도 경쟁력 있는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낸 것이다. ETRI 연구원들이 개발 성공 직전까지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집요하게 고민했고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다.
TDX 개발은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전자 교환기 고유 모델 개발에 성공한 나라로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국내 기술로 상용화될 경우 기계식에 비해 부피가 1/5정도로 줄어들기에 저렴한 가격으로도 국민 모두가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그 옛날 여러 사람이 근무하던 사무실에서 전화기 한 대를 사용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기존에 2~3년가량 소요되었던 전화기 설치 시간이 일주일 안팎으로 접어들면서 그야말로 국내 통신망의 급속한 발전을 이끌어 내는데 기여했다. 교환기 한 대는 소형 컴퓨터 2~300대의 시스템을 합한 것 이상으로 정도로 시스템이 복잡하므로 국내 IT 산업의 초고속 성장을 이끌어 내는 데 역시 큰 몫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수백만 라인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 육성, 국내에 없는 부품을 조립하고 만드는 과정까지 모든 기술 습득을 가능케 한 TDX 개발. 이는 과거보다 나은 현재를 만들기 위한 기술이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미래 통신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길을 이끄는, 원시안적 기술이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 오답이 아니라, 시도하지 않고 포기하는 순간이 오답일 것이다.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우리나라 전자 산업이 세계로 뻗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ETRI 연구원들의 빛나는 열정이 결국, 정답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 1976.
- 경제장관간담회, 시분할 전전자교환기 개발 최종 결정
- 1978.
- 한국전기통신연구소, 시분할 전전자교환기 개발 착수
- 1979.
- 1차 시험기 완성
- 1980.
- 2차 시험기 완성
- 1981.
- 3차 시험기 제작 착수
- 1982.
- 3차 시험기 완성, 경기도 용인군 송전우체국 시험 운용
- 1982.
- 경기도 용인군 송전우체국 시험 운용
- 1984.
- TDX-1 실용시험 모델 개발, 시범인증기 개통
- 1986.
- 상용화